[8/14(일) ㅡ 上]


광란의 파티 저녁을 보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란다우의 페스트할레(Festhalle) ㅡ 경기장 혹은 시민 센터 정도로 번역 가능한 독일의 공공 시설 건물 ㅡ 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했다. 독일에 들어올 때와는 달리, 한국으로 돌아가려거든 코로나19 음성확인서를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무 음성확인서가 아니라 귀국행 비행기를 타는 날 0시 기준 24시간 이내의 항원(antigen)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증서 말이다. 의료 전문인이 공인된 키트와 검체 채취 방식을 활용하여 인적 사항 및 감염 여부와 관련된 정보들이 명시된 공식 문서가 필요했다.


나는 8월 15일 저녁에 귀국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14일 어느 때에나 항원 검사를 받아 음성 결과를 받아들면 아무런 문제 없이 비행기에 '일단' 탑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제사 털어놓지만, 사실 이 문제 때문에 독일 일정을 이토록 아쉽게도 짧게 잡긴 했다. 계획대로라면 11일에 처음 독일 땅을 밟은 뒤 나흘째 되는 날에 검사를 받는데, 설사 독일에서 내가 재감염이 된다 하더라도 나흘째 되는 날에 항원 검사를 통해 양성으로 확진될 확률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정말로 재수가 없어서 독일 체류 기간 중에 코로나19에 다시 감염이 되었다고 쳐도 어쨌든 14일 음성 확인서를 들고 나는 귀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을 것이고, 8월 16일 귀국 직후 실시한 PCR 검사는 민감도가 훨씬 높을테니 별 수 없이 양성으로 판명나겠지? 그렇다면 나는 귀국 이후 7일간 자가 격리를 하면 된다. 그리고 8일째 되는 날인 23일에 대전에서 진행되는 과제 평가에 문제 없이 참석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최소한 15일에 귀국 비행기를 타야 하고, 감염 기회를 최소화하기 위해 직항편으로 최대한 늦게 출국해야 한다 ㅡ 뭐, 이런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독일 일정을 짰던 것이다. 내가 제일 걱정했던 상황은 코로나19에 걸리는 상황이 아니라, 코로나19 양성 확진이 독일에서 뜨는 바람에 예정된 날짜에 귀국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Bernd가 미리 예약해 준 덕분에 정해진 시간에 검사장에 들어갔는데... 아뿔싸, 여권을 들고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호텔에 갔다가 여권을 들고 와서 관련된 정보들을 빼곡히 적은 뒤 ㅡ 덕분에 내 여권번호가 무엇인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외울 수 있게 되었다. ㅡ 접수원에게 순 독일어로만 적혀있는 서류를 제출했다. 안타깝게도 독일 시민권자가 아닌 나는 이 한 번의 검사를 위해 13유로를 지불해야 했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검사를 받고 대기하기에 5분 정도 기다리니 저쪽에서 키트를 하나 새로 꺼내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고, 'Kim'을 호출하기에 나는 검사 장소로 이동했다. 검사를 진행하는 분은 독일어로 검사를 진행할 지 영어로 할 지 물어보았고, 나는 (당연히) 영어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어 면봉이 내 혀 구석구석을 먼저 훑은 뒤 오른쪽 콧구멍으로 들어오는데... 아니, 내가 지금까지 두 번 코로나19 감염이 되면서 겪었던 수많은 코찌름(?)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수준의 깊이로 채취 면봉이 코를 파고 들었다. 동양인인 나의 코 구조는 서양인의 코 구조와는 사뭇 다를텐데 너무 같은 기준을 두고 찌르시는 거 아닌가요,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뭐 이것이 독일의 방식이겠거니 하고 꾹 참았다. 얼얼해진 콧구멍을 좀 진정시키고 나왔다. 접수원은 아까 결제를 할 때 제공한 QR 코드를 통해 테스트 결과를 온라인으로 확인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호텔로 돌아오니 어제 파티를 마치고 호텔에서 쉰 몇몇 하객들과 어제 혼인을 한 Bernd와 Ecaterina가 호텔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잘 잤냐는 인사와 함께 너무 코를 찔러서 깜짝 놀랐다고 너스레를 좀 떨어주었다. 물을 마시면서 좀 있다보니 어느새 QR 코드를 통해 테스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확인해 보니 음성이란다. 그럼 그렇지, 2달 전에 두번째로 감염되었던 내가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3차 감염될 리는 없지. 순간 독일 일정을 너무 짧게 잡은 것에 대해 약간의 후회가 스쳐지나갔지만, 그럼에도 난 내 할 몫을 온전히 다 해내고 부끄러운 마음 없이 귀국할 수 있겠구나 싶어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독일에서의 코로나19 관련 걱정은 모두 끝장이 났다.


그리고 맞이한 작별의 시간. Bernd와 Ecaterina에게 포옹하며 우리는 곧 다시 만날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이렇게 이어진 인연에 무척 감사한다고, 만나서 무척 반가웠다고, 초대해 주어서 고맙다고 진심을 다해 말했다. Ecaterina에게는 루마니아어로 'La revedere(다시 만날 때까지, 프랑스어의 au revoir와 같은 의미)'라고 말해 주었다. 이들은 며칠 뒤에 신혼 여행차 잔지바르(Zanzibar) 섬으로 가는데, 우리 아버지가 거기 참 좋아했다며 거기서 원숭이들을 보거든 꼭 사진과 영상을 찍어 내 인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Katta 부부의 차를 타고 카를스루에(Karlsruhe)로 향했다. 원래 내 목적지는 보름스(Worms)였지만, 어느 경로로 가나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주의 교통 중심지 중 하나인 카를스루에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것. 마침 Katta는 카를스루에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내가 보름스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까지 잠시 자기 집에 머물면서 점심을 먹을 것을 제안했다. 나는 기쁘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카를스루에는 작지 않은 도시였다. 사실 카를스루에 공과 대학은 워낙 유명한 교육, 연구 기관이기도 하고 여기에 독일 연방 대법원이 있다는 사실도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었다. Katta의 아내가 우리를 위해 인도식 치킨 커리를 준비하는 동안 Katta는 나를 데리고 짧은 카를스루에 관광을 시켜 주었다. 카를스루에 궁전, 혹은 성은 좌우대칭이 아주 정확하게 들어맞는 꽤 멋진 건물이었는데, 굳이 8유로나 내면서까지 성 꼭대기에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다만 궁전 뒤쪽에 펼쳐진 드넓은 녹지는 시민들의 쉼터로 딱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카를스루에에 같이 있는 기념으로 같이 사진을 여러 번 찍었다.


짧은 관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스테인리스 쟁반에 쌀밥이 한가득, 그리고 치킨 커리가 한쪽에 여러 덩이 놓여 있었다. 나는 흔쾌히 인도 식사니까 인도 방식으로 먹겠다고 선언했고, 부족한 실력이지만 손을 열심히 놀려 커리를 밥에 묻힌 뒤 오밀조밀 밥을 뭉쳐 먹기 좋은 크기로 만든 뒤 입에 집어넣어가며 밥을 먹었다. 그런데 너무 맛있는 것이었다. Katta의 아내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한국인이 자기 집에서 인도 식사를 손으로 먹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놀라워하고 있었고, 내가 또 맛있게 잘 먹으니까 거기에 감동한 모양이다. 내가 손으로 점심을 먹는 모습이 연신 신기한 듯 사진을 찍었고, 심지어 나중에는 가족들에게 내 모습을 영상 통화로 보여주기까지 했다. 뭐, 이 정도 서비스야... 라기에는 밥이 너무 맛있어서 손으로 열심히 입 안에 밥을 털어넣는 데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뒤 Katta의 아내는 인도에서 먹는 방식대로 밀크 티를 타서 대접해 줬는데, 나는 홍차를 우려낸 뒤 우유에 부음으로써 밀크 티를 만드는 것인 줄 알았더니, 아예 홍차 가루를 넣고 끓인 물에 우유까지 마저 넣고 더 끓여주어 밀크 티를 만드는 것이었다. 내 기준보다 설탕을 많이 넣기에 조금 달겠다 싶었는데, 내가 다음에 밀크 티를 만들어 먹거든 그보다는 설탕을 적게 넣겠노라 생각했다. 이 결심을 미리 내다봤는지, Katta 부부는 내게 인도산 홍차 가루와 함께 곁들여 먹을 과자 및 디저트류를 선물로 주었고, 나는 연신 고맙다고 했다. Katta는 자신의 처남이 내년에 하이데라바드(Hyderabad)에서 결혼할 예정이니 그 때 다시 초대하겠노라고 말했다 ㅡ 어쩌면 내년에 인도에 갈 기회가 다시 생길는지도!


(to be continued...)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