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야구부원들이 광주제일고와의 대결 중에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외친 것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실이 알려진 그날부터 굉장한 화젯거리였는데, 대체로 슬픈 역사에 대한 배려 없이 혐오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은 배재고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매우 컸다. 결국 배재고 학생들은 협회의 결정에 의해 몰수패를 당한 것도 모자라 향후 6개월간 대회 출전이 금지되었다. 사실상 이 정도면 야구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프로 선수로 뛰는 것까지 굉장히 어렵게 된 것인데, 대한민국에서 프로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을 꿈꿔왔던 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10대 학생들이 스타벅스 운운하며 구호를 외친 것은 정말 문자 그대로 '철딱서니 없는'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모르는 사람이야 '스타벅스를 간다는 게 혐오와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5월의 신문지상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탱크데이 논란을 빼고는 사람들의 왈가왈부를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적어도 광주가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이었다는 점을 생각했다면, 그리고 그날에 벌어진 참상에 공감한다면 그런 구호를 꺼내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긴 하다. 하지만 10대 야구부원들은 애초에 미성숙한 사회 구성원 아닌가. 자기들 딴에는 사기를 올리고 상대방을 조롱하려는 구호로 생각해 낸 게 그런 미성숙한 외침이었다. 뭐, 어른들도 그런 혐오나 비방, 조롱의 표현을 얼마나 무절제하게 뱉어내지 않던가.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친구로부터 요즘 10대 학생들의 정치적 성향은 굉장히 보수 쪽에 가깝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0대 아이들이 '정치적인 의미로서의' 보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단지 10대들은 기성 세대의 가치관과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그 지점에서 쏟아지는 훈계와 가르침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지금의 주류 정치인들이 향유하는 진보적 정치 관점이 그저 싫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10대가 삶을 경험했으면 얼마나 경험했겠는가? 서울에 사는 10대 학생들이 호남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한들, 그것이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혐오였을까? 고작 사회생활이라고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좀체 넘어보지 못한 10대들의 언사에 무슨 정치적인 진심이 있단 말인가? 내 생각에 10대 학생이 내뱉은 말에서 정치적 진심을 찾아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것은 10대를 너무 과대평가하거나 혹은 10대마저도 정치적인 적대 세력으로 인식한다는 아주 어른답지 못한 태도이다. 단지 그들은 어른들의 문화와 언행을 흉내내고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 아직 성숙해가는 과정 중에 있는 10대들의 높은 감수성을 고려하자면, 10대들의 정치적 태도는 외부의 정보와 행동이 주는 영향에 크게 좌우된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 와중에 마침 자신들이 싫어하는 주류 정치인을 비판/비난하는 유튜브나 쇼츠 영상에서 그런 표현들을 자주 접했을 것이고, 생각 없이 그런 말들을 자신들의 연료로 삼아 외쳤던 것일 게다.


그러니 이 사건에서 진정으로 문제 삼아야 할 사람은 자신들의 왜곡된 사상을 무책임하게도 투명한 아이들의 정신 세계에 투영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말 그대로 방치한 어른들이다. 특히 배재고등학교의 어른들. 그 상황을 수습하지도 않고, 문제가 불거진 뒤에 통절하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야구부원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징계가 쏟아질 때 어른들은 뒷짐지고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관망하기만 했다. 20대의 대학생들이 이런 일을 벌였다면 그 후과(後果)는 성인(成人)이 된 그들이 책임져야 하지만, 우리가 10대를 미성년자(未成年者)라고 부르는 문자적 의미를 곱씹어본다면 그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할지도 모르는 그런 징계의 철퇴가 아이들의 머리 위로 내리꽂히기 전에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선처를 구하기 위해서 갖은 행동을 다 벌여도 모자랄 판이다. 그러한 호소는 결국 어른들의 왜곡된 언사를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만든 사회적 환경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서 행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주는 의미심장한 부분은 따로 있다. 10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논란 거리이자 '왜곡된 역사'로 인식된다는 것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례라는 점이다. 그것도 별다른 근거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추념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근심거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 중 거의 유일하게 5.18만이 폭넓은(?) 거부를 경험하고 있다. 문제는 이게 젊은 연령층일수록 이 사건이 조작되고 왜곡된 가짜 민주화운동이라는 인식이 굉장히 파다하다는 것이다. 이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수준이 아니다. 내 친구의 말을 다시 떠올리자면, 그런 말을 크게 내뱉는 스피커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자칫 잘못하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미래 세대에게 찬밥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언젠가는 소위 '늙크크'만이 추념하는 이상한 역사적 사건, 뭐 이런 식으로 회자된다는 뜻이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20년 후에는 정말 이런 움직임이 대세가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좀 더 좋은 해결책이라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단체에서 배재고등학교 학생들을 광주로 초청해서 1980년 5월에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해 주면서, 왜 아직도 이런 강조를 되풀이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교육적 접근을 통해 일괄 징벌을 최소화하거나 대체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살인이나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이는 교육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니 그에 상응하는 징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비하발언을 했다는 것이 재기를 꿈꾸기 힘들 정도의 징계를 10대 학생들에게 내릴 만한 그런 중범죄(重犯罪)인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지 않는가 ㅡ 근현대사 교육이 부실했던 것 아니냐고. 좀 더 큰어른과 같은 자세로, 우리는 이런 아픔이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를 부정하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며 바른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 더 품위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서로 화환을 보내며 조롱에 조롱을 더하고 있을 따름이다. 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얘기만 나오면 서로들 이렇게 악을 쓰고 어떻게든 상대편을 눌러버리려고 기를 쓰는 것일까? 그저 답답할 노릇이다.


징계가 이렇게 진행되어 버리면, 적어도 5.18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연료는 없을 것이다. 당장 징계의 대상인 수십 명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꿈을 꺾어버린 5.18에 대한 반감만 커질 것이다. 그리고 반성과 이해 대신 피해 의식에 따르는 분노를 연료 삼아 반대 세력 내에서의 혐오와 조롱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그것이 정말 5.18을 상징적인 사건으로 추념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미래일까? 부디 현명하게 잘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