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는 물건들은 대개 18L 증류수, 중소형 가전 기기 및 가구류이다. 식료품의 경우 더 이상 매장에서 팔지 않는 1.2 kg 들이 콘푸레이크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영등동에 있는 롯데마트나 집앞에 있는 동네마트에 나가서 사 온다. 이렇게라도 제한적으로 이용하는 온라인 쇼핑몰은 다름아닌 11번가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아직도 11번가가 생존해있냐며 놀라워한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쿠팡 관련 사태는 내겐 강 건너 불구경과 같다. 쿠팡을 이용하는 경우는 다른 연구원들의 수요를 받아 연구비카드로 결제할 때가 대부분이다 ㅡ 즉 다른 이용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셈이다. 그럼에도 최근 이슈가 된 정보 유출 사태를 주의깊게 보고 있는 것은 이 상황이 전에 없던 기묘한 구조 하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새벽배송 논란은 군불이었고, 지금은 검은머리 외국인 의장과 그 집단을 향한 대중의 혐오로 옮겨붙어 활활 타는 중이다. 여기에 청문회에서 오가는 고성이 휘발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결과 남는 게 뭔가. 국회는 청문회를 잘못된 것을 고치고 경쟁 체제로 이행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다른 경쟁 업자들이 지리멸렬한 현 상황에서 쿠팡의 위세는 꺾일 수 없다. (분하겠지만, 쿠팡 없어지면 그것 자체로도 사회적 문제가 된다.) 하지만 국회는 모든 것을 '합법적인 양' 회피할 작정을 하고 나온 쿠팡을 상대로 몽둥이 운운하며 성만 내고 있다. 내가 보기엔 상황을 정확하게 듣고(聽), 또 듣는(聞) 청문회(聽聞會)를 감정적 격노의 한풀이 쇼츠 콘텐츠 양산의 무대로 활용하는 게 아닌가 싶다. 고함만 내지르기만 했지 아무런 소득이 없고, 오히려 다른 논란만 키웠다. 나도 한국인이다보니 쿠팡 대표의 대응이 다소 불편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지만, 정작 키를 쥔 쪽은 조용히 하라고 외치는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그 와중에서도 자기 할 말은 꼭 굳이 영어로 하겠다는 쿠팡 대표 '해롤드 로저스'씨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담인데, 국회의원들이 조용히 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그 대답이 들을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저 외국인이 또 눈치 없이 뭔 말을 할 지 알 길이 없어서'가 아닌가 싶다. 한국 국민들에게 국정원과의 공조 결과를 잘 알리고 공유해야하지 않겠냐는 대표의 답변은 참으로 정치적으로 노련한 수였다.)


사태 수습의 본질은 징벌과 훈계가 아니다. 사고에 대한 징벌적 배상은 소송과 재판을 관할하는 사법부에 맡기고, 국회는 국회의 할 일을 해야 한다 ㅡ 저주의 굿판을 생중계하는 게 아니라 개인정보가 더 잘 보호받는 사회가 되도록, 그리고 기업들이 이런 사태를 겪고도 '뭐, 어쩔 수 없잖아요'라는 태도로 밀어붙이지 못하도록 법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다. 한 번 냉정히 생각해보자. 쿠팡이라는 영리 목적의 기업이 동일한 사안으로 인해서 미국에서만 혼나고 한국에서는 떵떵거린다면, 그건 쿠팡이 오만방자한 것 뿐만 아니라 한편에서는 한국의 시스템이, 한국이 사회문화가 어떤 측면에서는 남달랐기에 ㅡ 혹은 부실했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경쟁 업자가 지리멸렬한 현 상황에서 쿠팡의 위세를 꺾이기 힘들다. 당장 쿠팡이 영업정지가 되면 그로 인해 야기될 사회적 파장과 충격이 더 부정적이다. 쿠팡을 악마화하면 상대적으로 나는 선해지고 정의로워 질 것만 같지만, 결국 모두의 패배로 남는다. 부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내재한 문제점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