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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어 공부는 미국에 있는 동안 조금 하다가 KIST에 입원해서는 거의 하지 못했다. 이렇게 잊어버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던 중, 연구원에서 지원하는 인터넷 교육 강의 목록에 이란어가 추가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10월에 이란어 문법 입문 강의를 신청해서 들었는데, 특별한 교본이 있는 강의는 아니었으나 그동안 많이 잊었던 페르시아어 문자와 발음, 그리고 기본적인 문법과 단어들에 대해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이란어 입문』 책을 조금씩 공부해 나가기 시작했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 야식으로 닭가슴살을 먹고 나서 보고, 연구원에서 점심 먹고 오후 업무 돌입하기 전 쉬는 시간에 책을 보고, 주말에 시간이 날 때 보고 이런 식이었다. 생각보다 재미가 붙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속도가 나기 시작했고, 11월에는 이란어 회화 강의를 신청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지난주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것이었다.
격리병실에서는 시간이 철철 남아돌았기 때문에 가져온 『이란어 입문』 교본을 볼 시간은 충분했다. 게다가 노트북을 가져온 덕분에 교본을 통해서 알기 힘들었던 문법적 내용이나 낱말 뜻풀이, 발음 등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후치사 'را(러)'가 언제 쓰이는지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아 궁금했는데 ㅡ 사실 이것은 대학교실에서의 강의를 염두에 쓴 교과서인지라 세세한 부분에 대한 설명은 빠져 있다. ㅡ 유튜브 강의 영상을 통해 이 후치사가 대격으로 사용되는 한정명사에 대해서만 사용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한 결과, 책을 완전히 독파하였고 오늘 이 교본의 마지막 과(課)인 20과까지 공부함으로써 『이란어 입문』 에서 다루는 모든 문법 내용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졌다. 아직은 초급 수준의 강의이기 때문에 완벽한 문법 숙지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수준의 동사의 활용(活用)과 접사에 의한 명사의 변형 및 에저페(اضافه)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몇 가지 느낀 것을 소략(小略)하자면...
1. 자음만 있고 모음이 없는 표기법이라지만 익숙해지면 어느새 모음이 없어도 그것을 유추해서 낱말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다. 즉, ㅇㄱㄹㅇㅂㅂㅂㄱ를 읽을 수 있는 한국인이라면 아랍어나 페르시아어, 히브리어는 익숙해지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 읽는 데 문제는 없다.
2. 페르시아어의 문법은 다른 굴절어, 이를테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에 비해 크게 어렵지 않다. 우선 프랑스어와 같이 복잡한 시제가 없이 현재, 현재완료, 과거, 과거진행(부정과거), 과거완료, 가정형, 가정형 과거, 명령형 정도면 웬만한 표현은 가능하다. 또한 독일어와 같은 부정관사와 관사도 없으며 명사의 성도 없다. 더욱이 러시아어에 비하면 명사의 곡용(曲用)이 이 정도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아랍어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이, 페르시아어에서는 같은 음소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가 두어개씩이나 된다. 예를 들어 /z/ 발음을 내는 문자는 네 개나 있는데, 절(ذ), 제(ز), 저드(ض), 저(ظ)가 그것이다. 대개 아랍어에서 차용된 글자에서 이런 문자들이 자주 쓰이는 예가 보이는데, 아마도 아랍어에서는 해당 문자들의 페르시아어의 발음과는 달랐으리라. 아마도 훗날 또 바람이 불어 아랍어를 공부하게 된다면 그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4. 페르시아어를 흘려쓰는 재미가 있다. 사실 러시아어를 공부할 때, 키릴 문자를 필기체로 이어쓰는 재미가 있었는데, 페르시아어 문자를 이어 휘갈겨 쓸 때의 쾌감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지만, 또 그렇게 써 내려가는 맛이 있다.
5. 아랍어, 페르시아어, 히브리어의 경우 많은 단어들이 세 개의 자음으로 구성된 어근으로부터 파생되었는데, 이로 인해 무한정 길어질 수 있어 무한한 개수의 단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서구권 언어와는 달리, 페르시아어에서는 특히 동사의 경우 무한정 길어질 수가 없어 만들어낼 수 있는 단어 개수에 한계가 있다. 또한 조음(造音) 규칙이 관습상 존재하는 언어의 특성상 아무렇게나 자음을 나열한다고 다 그런 발음이 나오는 동사를 만들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보통 기본동사에 해당되는 동사에 다른 단어 등을 앞에 붙여서 만드는 복합동사가 흔히 보이는데, 이 방식이 한국어의 '하다' 혹은 일본어의 'する'와 비슷하다. 예를 들어 취소의 의미를 나타내는 동사의 경우 한국어는 '취소+하다 = 취소하다', 일본어의 경우 'キャンセル+する=キャンセルする'인데 페르시아어의 경우 kansel(کنسل) 과 kardan(کردن)을 복합시켜 'کنسل کردن'이라고 쓴다.
아무튼 『이란어 입문』 교본을 다 뗐으니 이대로 만족할 수 없지. 어제 교보문고에서 영어로 된 페르시아어 교본을 추가 구매했다. 해당 교본은 초급수준에서부터 고급수준에 이르는 내용을 100일동안 차근차근히 배울 수 있도록 설계된 책이라고 하니, 더 새로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예상치 못하게 단시간 내에 페르시아어 실력이 러시아어 실력을 상회하게 될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실력을 쌓고 나면 러시아어도 다시 살펴보고 실력을 다시 쌓아야겠다. 그나저나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응시하지 않은 DELE 시험도 내년에 다시 응시해야 할텐데, 그것 공부부터 다시 해야겠군 참.
공부할 건 많다. 물론 이것은 내 업무랑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내 취미일 뿐이지만 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