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용석이와 성림이가 하도 '아비투스 ㅡ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이라는 책에 대해 카카오톡으로 신나게 이야기하며 강력 추천을 하길래 나도 e-Book으로 구매해서 몇 장 읽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나더러 꼭 읽어보라고 한 이유를 알겠더라.


이 책의 원제(原題)는 «Habitus: Sind Sie bereit für den Sprung nach ganz oben?»인데 한국어판 부제(副題)는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이지만 종이책 띠지에 쓰여있는 글귀 '당신은 최상층에 오를 준비가 되었습니까?'에서 원 독일어 부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비투스(Habitus)는 위키백과의 설명을 빌려서 말하자면 '인간 행위를 상징하는 무의식적 성향'을 뜻하는 단어인데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주창한 개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아비투스라는 개념은 사회를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으로 구별짓는 데 사용되는 주요한 개념이며 단순히 돈이나 관료 지위를 통해 사회계급이 구분되는 것이 아닌 교육으로 유전되는 문화적 생활양식에 의해 구분된다고 부르디외는 주장하였다고 한다. 즉 사람들의 취향과 습관은 개인의 고유한 습성에서 연원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사회적 계급의 행동특성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익혀지고 발현되는 것이라는 뜻.


이러한 사실을 대놓고 드러낸다는 것은 요즘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암묵적 룰이라고 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와 다소 상충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틀린 말이 없다. 진짜 부자와 졸부를 구분짓는 것 자체가 이미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를 우리가 (비록 그 개념에 대해 일찌기 들어본 적은 없어도) 긍정한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진짜 상류층의 아비투스는 다른 계층의 아비투스와는 분명히 비교 및 대조되는 특성을 지녔다. 처음 남성잡지 GQ를 읽었을 때, 처음으로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서서 음식을 주문했을 때, 해외여행을 처음 갔을 때 느껴지는 그 막다른 격차의 느낌이랄까?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도 않았지만, 벌써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예화를 읽어보면서 '아, 나도 이렇게 생각했는데...'라고 무릎을 탁 치는 경우가 참 많았다.


예를 들면, 내가 다양한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유용성(有用性)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지적 사치 행동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내가 요즘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앞으로 살면서 러시아인과 러시아어로 깊게 소통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기껏 해봐야 코로나19가 끝나고 여행을 간다든지, 혹은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이 러시아계 학자라든지, 뭐 이런 경우에서는 굉장히 제한적인 수준의 러시아어 회화만이 오갈 것이다. 그러니 나는 러시아어를 열심히 활용해서 써 먹으려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가끔 내가 러시아어를 배운다는 얘기를 하면 꼭 그 외국어의 유용성이라든지 그것을 가지고 할 수 있을 법한 일들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유럽의 최상층 학생들이 고전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배우는 것을 이해 못하겠지만, 그게 결국 아비투스의 차이를 반영한다는 것이 이 책의 설명을 끌어와서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왜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밖에 생각을 못하는 걸까, 왜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걸까, 왜 이 사람은 인간과 사회를 왜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찾지 못했는데, 어쩌면 그런 생각 뒤에 우월감 혹은 열등감같은 게 찾아온다면 그것을 아비투스의 개념에 비춰보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도리스 매틴스 성림이가 하도 '아비투스 ㅡ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이라는 책에 대해 카카오톡으로 신나게 이야기하며 강력 추천을 하길래 나도 e-Book으로 구매해서 몇 장 읽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나더러 꼭 읽어보라고 한 이유를 알겠더라.


이 책의 원제(原題)는 «Habitus: Sind Sie bereit für den Sprung nach ganz oben?»인데 한국어판 부제(副題)는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이지만 종이책 띠지에 쓰여있는 글귀 '당신은 최상층에 오를 준비가 되었습니까?'에서 원 독일어 부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비투스(Habitus)는 위키백과의 설명을 빌려서 말하자면 '인간 행위를 상징하는 무의식적 성향'을 뜻하는 단어인데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주창한 개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아비투스라는 개념은 사회를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으로 구별짓는 데 사용되는 주요한 개념이며 단순히 돈이나 관료 지위를 통해 사회계급이 구분되는 것이 아닌 교육으로 유전되는 문화적 생활양식에 의해 구분된다고 부르디외는 주장하였다고 한다. 즉 사람들의 취향과 습관은 개인의 고유한 습성에서 연원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사회적 계급의 행동특성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익혀지고 발현되는 것이라는 뜻.


이러한 사실을 대놓고 드러낸다는 것은 요즘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암묵적 룰이라고 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와 다소 상충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틀린 말이 없다. 진짜 부자와 졸부를 구분짓는 것 자체가 이미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를 우리가 (비록 그 개념에 대해 일찌기 들어본 적은 없어도) 긍정한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진짜 상류층의 아비투스는 다른 계층의 아비투스와는 분명히 비교 및 대조되는 특성을 지녔다. 처음 남성잡지 GQ를 읽었을 때, 처음으로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서서 음식을 주문했을 때, 해외여행을 처음 갔을 때 느껴지는 그 막다른 격차의 느낌이랄까?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도 않았지만, 벌써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예화를 읽어보면서 '아, 나도 이렇게 생각했는데...'라고 무릎을 탁 치는 경우가 참 많았다.


예를 들면, 내가 다양한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유용성(有用性)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지적 사치 행동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내가 요즘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앞으로 살면서 러시아인과 러시아어로 깊게 소통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기껏 해봐야 코로나19가 끝나고 여행을 간다든지, 혹은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이 러시아계 학자라든지, 뭐 이런 경우에서는 굉장히 제한적인 수준의 러시아어 회화만이 오갈 것이다. 그러니 나는 러시아어를 열심히 활용해서 써 먹으려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가끔 내가 러시아어를 배운다는 얘기를 하면 꼭 그 외국어의 유용성이라든지 그것을 가지고 할 수 있을 법한 일들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유럽의 최상층 학생들이 고전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배우는 것을 이해 못하겠지만, 그게 결국 아비투스의 차이를 반영한다는 것이 이 책의 설명을 끌어와서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왜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밖에 생각을 못하는 걸까, 왜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걸까, 왜 이 사람은 인간과 사회를 왜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찾지 못했는데, 어쩌면 그런 생각 뒤에 우월감 혹은 열등감같은 게 찾아온다면 그것을 아비투스의 개념에 비춰보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도리스 매르틴(Doris Märtin)의 이 책을 마저 다 읽은 뒤 아마존에서 구입한 루디 페인(Rudy Payne)의 책 «A Framework for Understanding Poverty (우리말 번역본 제목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읽어봐야겠고, 또 욕심을 낸다면 부르디외의 저작을 해설한 책들을 좀 읽어봐야겠다. 아비투스를 추천한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