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탄소학회 추계학술대회가 구미에서 열렸다. 처음에 일정표를 보고 구미에 이런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가 궁금했는데, 구미에는 구미코(GumiCo)라는 컨벤션센터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리고 공단 여려개가 모여있는, 인구 40만이 넘는 꽤 큰 중소도시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틀 간의 학회 일정을 마친 뒤 어디를 좀 더 돌아보면 좋을 것 같아서 근처 칠곡군의 왜관 쪽에 내려가서 성 베네딕트회 수도원에도 가 보고, 관호산성(觀湖山城)에 올라 관평루(觀平樓)에서 칠곡보와 철교를 아우르는 풍광도 감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구미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 중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혹은 논란이 많은 박정희 前 대통령의 생가와 기념관으로 향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정치적인 의견이 무엇인지를 뉴스와 신문을 통해 인식하기 시작한 중고등학생때부터 줄곧 내 앞에선 꾸준히 박정희를 찬양해왔다. 지금 당장 전화를 걸어 박정희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구국의 지도자'라는 간단명료한 대답이 곧바로 떨어질 것이 뻔하다. 물론 나는 그의 대통령 재임 시절과는 아득히 먼 시절에 태어나 살고 있어 아버지처럼 뭔가 생생하게 힘을 실어 그를 평가할 수는 없겠으나, 그의 공(功)과 과(過)는 너무 많다보니 사실 5천만 정도의 한국인들 가운데 박정희의 햇빛 혹은 그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당장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는 박정희 재임 시기에 설립되었는데, 서울 본원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전시물과 기념물이 들어서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박정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그를 평가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ㅡ 그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 산업화 시절 대한민국 성장기(60-80년대)를 이해하는 가장 큰 지름길이기도 하고, 그것을 토대로 성숙한 현재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데에도 무척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구미에 보존되어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와 기념관은 박정희를 비롯한 보수 우파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자들이 박정희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나 많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수장고에서 일부 물품을 꺼내 기획전시를 기획할 정도라면 딱히 요식행위 정도로 그치는 기념이 아님에 분명했다. 토요일 아침에도 기념관과 생가를 찾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지지난주가 그의 탄생 106년 기념일이라고 했으니 아마 이보다 더 많은 수의 지지자들이 모여 그의 사진 앞에서 머리를 숙였으리라. 이 많은 어른들의 기억을 조금 더 아름답게 그려내고 좋았던 부분만 강조될 수 있도록 전시관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있었던 많은 공적을 선별적으로, 그러나 굉장히 알기 쉽고 간결하게 홍보하고 있었다. 서독의 지원, 한일관계 개선, 고속도로 및 산업단지 조성, 무역 진흥 및 새마을 운동 등등.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과학기술 진흥에 대한 전시 내용이 결코 작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KIST의 설립은 물론이고 기능올림픽, 기술 입국을 향한 여러 조치에 대한 소개도 빠지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식민지 국가들이 얼마 지나지않아 독재정권 치하에 놓이게 되었지만, 유독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막강한 경제력과 높은 삶의 질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은 (하필이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독재자가 과학기술 발전에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긴 하다. 그 점은 우리에게 참 운이 좋았던 부분이다.


하지만 너무 일방적인 찬양에만 그쳐있는 전시물품을 보며 언제쯤이면 이 기념관에 박정희 대통령의 그늘을 다룰 공간에 들어서게 될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전북 고창에 있는 미당 서정주 기념관에 가 보면 그가 지은 수많은 아름다운 시들 위로 5층이었던가, 거기에는 그가 쓴 친일 성향의 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위대한 공적을 가릴 것같은 흠은 감추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인간의 정이라지만, 그것이 극복될 때에야 비로소 한 인물과 한 시대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불필요한 소모적 대결이 없는 미래가 열릴 수 있는 법이다. 


아직 그의 탄생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의 서거 100년 이후 쯤에는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공적과 과오에 대한 전 국민적 공감을 얻는 평가가 있기를 기원한다. 어차피 세상 사람 모두에게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는 법이며, 본래 공이 크면 과도 크게 드러나는 법이다. 이는 과거의 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는 그의 모습이 모두에게 왜곡없이 바르게 기억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그리고 이념과 사상에 관계 없이 그의 이름을 모두가 바르게 부를 수 있기를 기원하며 기념관을 나왔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