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희석이에게서 온 편지]
Date 2009.04.01


간만에 편지가 왔다. 군인에게서다. 내 생각에 이제 희석이의 편지를 끝으로 '군 복무 중인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혹은 편지를 받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만감이 교차한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 편지. 전역을 앞둔 사람이긴 글을 장황히 쓸 리가 없지 하면서 찬찬히 쓴 내용을 뜯어보는데, 뭔가 기분이 묘했다. 희석이는 내가 전화를 받아주고 ㅡ 나는 군인들과 통화를 매우 길게 한다. ㅡ 편지 한 통 써준 게 너무나도 고마웠단다.

그런데 그 말은 내가 할 소리이다. 밖에 있는 사람을 용케 기억해 준 사람이 바로 너고, 그리고 심지어 편지를 먼저 쓴 사람도 너란 말이다. 네가 훈련소에서 지낼 때 민간인인 내게 먼저 편지를 썼단 말이다. 게다가 네가 먼저 편지를 보내고, 내가 거기에 답장을 써서 보낸 뒤, 뭔가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이어 군에 간 몇몇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편지를 써서 몇 통 보냈다. 예전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사실 내 인생에서 지난 2년동안 편지와 엽서를 그렇게 썼던 적도 없었다. 편지를 쓰는 것은 오랜만에 '아날로그적 교감'에 대해 알게 해 주었고, 연필로 생각을 적어내려가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지만, 문명의 이기에 젖는 것이 이미 순리가 되어버린 우리 세대에게는 '군'이나 '연애'라는 환경이 없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치부되곤 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런 '아날로그적 교감'이 늘어난 덕분에 오히려 군 복무 전보다 친구들에게 더 성실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같다. 그리고 오히려 입대한 이후에 연락이 잦았던 것 같고,한창  군 생활을 할 때 더 자주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 가운데 편지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사실 이렇게 편지나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것 자체가 '그는 내 인생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사람'이란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혹자는 내게 '무슨 남자한테 편지를 쓰고 앉아있냐'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별로 개의치는 않는다. 아니 왜, 편지는 무조건 여자한테만 쓰라는 그런 썩어빠진 법이 어디있나?

희석이에게 답장은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역일이 가깝기 때문에. 그러나 다음에 만나거든 나도 네게 고맙다고 꼭 이야기해 주어야 하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