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프리토리아 선가든 호스피스]
Date 2008.01.10
최근 너무 더웠는데 오늘은 구름도 많이 끼고 하루 중에 잠깐 비도 내려 전체적으로 시원했던 하루였다. 점심 먹기 전에 잠깐 근교의 프리토리아 선가든 호스피스(Pretoria Sungarden Hospice)에 다녀왔다. 도대체 선가든, 선가든 하길래 무슨 정원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우리나라의 벼룩시장과 같은 것이었다.
작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벼룩시장을 보는 것 같았다. 여기는 집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가전도구, 주방용품, 책, 그 외의 모든 물건들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아 필요한 사람이 값싸게 얻어갈 수 있는 그런 곳으로 한국어로 이름을 붙이자면, '아나바다 시장'이라는 이름이 왠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곳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는 재활용품 시장이라고 해도 대개 내놓는 물건들은 깨끗하고 '별 하자가 없는' 물건들인데 비해, 이 곳은 뭔가 달랐다는 것. 예를 들면 소파는 구멍이 송송 뚫려 있고, 다트 게임 케이스는 이미 반파(半破)된 상태이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1.2인치 플로피 디스켓이 들어가는 디스크가 나와 있는가 하면,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줄 것 같은 구식 타자기도 나와 있다. 심지어 행사 참석 기념으로 나눠주는 기념 물품도 진열되어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헌책방은 꽤나 신기했다. 온갖 잡지와 서적들. 영어로 쓰인 책이 많았지만 더러는 아프리칸스(Afrikaans)어로 쓰인 책들도 많았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 책도 있었고, 론리 플래닛에서 나온 과테말라 여행자료집도 있었고, 재즈와 관련된 아주 작은 책도 찾아볼 수 있었다. Halliday&Resnick 일반물리학 6판도 있었다! 멘즈헬스(Men's Health) 과월호가 수북히 쌓여있어서 우람한 상반신을 과시하고 있었으나 GQ가 아니면 이제는 남성 잡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더구나 멘즈헬스는 저번에 한 번 사봤다가 엄청 후회했다. 아, 기왕 쓰는 김에! 멘즈헬스에 대해서는 할 말이 좀 있다. 멘즈헬스는 정말 실망스런 남성잡지이다. 그 잡지의 에디터와 컨트리뷰터에게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잡지는 남성의 문화에 대해서 진지한 이야기를 싣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련되고 다양한 패션이나 옷에 대한 기사나 사진이 풍성한 것도 아니고, 그나마 좀 눈길을 끌려고 몇 개 항상 들어 있는 '섹스'에 관한 이야기라고는 정말 무미건조한데다가 뭔가 깨달을만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중딩들이 읽으면 환호할 만한, 딱 그 수준의 내용이다. 더욱 희한한 것은, 분명 잡지의 제목이 '헬스'인데 건강이나 헬스에 관한 내용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딱 한 가지, 멘즈헬스의 표지를 장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탈의' 상태인지라 사람들 눈이 좀 끌린다는 것? 근육질의 남성과 글래머러스한 여성은 남녀노소 무론하고 관심을 받게 되므로, 이것 하나만큼은 칭찬할 만 하다. ;)
아무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서양음악사와 악기에 대한 좋은 책을 하나 발견해서 흥미롭게 읽고 있었는데 어느 할아버지가 와서 말하길
'이 책 살거니?'
'아뇨, 그냥 보고 있는 거예요.'
'음악 하나보구나?'
'아니예요. 그냥 서양음악에 좀 관심이 있었던 것 뿐이예요. 헤헤'
그 책을 보고 싶어하시는 거 같아서 자리를 비켜드렸는데, 아뿔싸. 그 책을 미리 내가 오기 전부터 점찍어뒀던 책이었던지 바로 가지고 텔러(Teller)에게 가져가서는 구입을 하시는 게 아닌가. 아, 150랜드(R) 정도 해서 좀 비싸다 싶긴 했지만, 그래도 있었으면 매우 좋았을 그런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으아~
그나저나 남아공에 있을 날이 1주도 채 안 되었다. 아악, 벌써 가야 한다니, 남은 시간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녀야지 ;)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