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보수 개신교계에서는 레이디 가가(Lady Gaga)를 가리켜 사탄을 숭배하는 악마라고 하였다. 2012년 4월, 아는 교회 형과 함께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렸던 그녀의 첫 내한 공연이었던 〈Born This Way Ball〉에 갔을 때, 콘서트를 보러 온 사람들의 (이 세상 수준이 아니었던) 옷차림새와 스타일링을 기억한다. 종합운동장역 출입구 근처에는 콘서트를 보러 온 이들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열심히 찬송가를 부르던 목회자와 청년들이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무관심으로, 일부는 조롱으로 그 경건한 작은 집회에 대응했다.


그러나 레이디 가가가 《Artpop》에서 상업적 실패를 맛본 뒤 음악적 변화를 꾀함에 따라 《The Fame Monster》와 《Born This Way》 시기 스타일을 주름잡던 충격적인 기괴함이 거의 사라지게 되면서, 교계에서는 Lady Gaga가 회심했다(?)는 평까지 내리기도 했다. 레이디 가가가 선보인 훌륭한 음악과 시대를 선도할 줄 알았던 다방면에서의 감각에 대해서는 이해하지도 못한채 주제넘게 대양(大洋) 너머에서 활동하는 한 여인의 구원에 대해 왈가왈부했다는 것이 참으로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레이디 가가는 이제 교계에서 더 이상 주목할 만한 문제의 인물 목록에서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보수 개신교계가 주목할 인물이 '영적으로 타락한'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크게 히트 친 노래 〈I'm Not the Only One〉로 유명한 샘 스미스(Sam Smith)라는 가수이다. 주목할 점 하나: 그는 양성애자(bisexual)라는 비교적 온건한(?) 고백을 한 Lady Gaga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서 아예 논바이너리(non-binary)라고 커밍아웃한 사람이다. 그리고 주목할 점 둘: 그가 올해 발표한 앨범인 《Gloria》는 '영광'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단어인데 여기에 수록된 곡들은 하나같이... (빌보드 1위를 차지한 수록곡 제목만큼이나) unholy하다. 



그제 샘 스미스에게 올해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Best pop duo/group performance)' 그래미 상(Grammy Award)을 안겨 준 싱글 〈Unholy〉는 예전에 빈지노의 〈Dali, Van, Picasso〉 관련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Harmonic Minor Perfect 5th Below (Hmp5↓) 음계를 사용했다 (http://fluorf.net/xe/102570). 정확히는 C# Hmp5↓ 인데, 이 음계에 포함된 증2도(augmented 2nd)가 주는 독특한 불안감이 불경(不經)하다는 뜻의 unholy라는 곡의 제목, 그리고 이 가사가 담고 있는 위태로운 불륜행각의 모습과 정말 잘 맞아 떨어진다. 또 정박에 떨어지지 않고 당겨대는 쿵쿵대는 리듬 역시 뭔가 불안한 정서를 부추긴다. 더욱이 후렴 부분은 마치 울림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설계된 성당에서 교회 합창단이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데 꼭 심판정에서나 들릴 기괴함이 느껴지기까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꼭 게임 배경음악같이 들리기도 해서 마치 '디아블로'와 같은 게임을 할 때 느끼는 스릴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부도덕한 행각을 벌이는 사람에게 불륜은 마치 방에서 부모님께 들키지 않고 몰래 해야 하는 게임과 같겠구나, 뭐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물론 최초의 젠더 퀴어(gender queer) & 트랜스젠더(transgender) 조합에게 그래미 상이 주어진다는 사회적 의미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래미 상이 그런 이유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권위 없는 상은 아니지 않은가? 다른 곡도 아니고 이처럼 불경하기 그지 없는 곡이라면 이런 상을 받을 충분할 자격은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새 싱글 〈I'm Not Here to Make Friends〉의 뮤직비디오가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는데, 이제는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신나게 한풀이 굿을 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향후 그의 행보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