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로베르트 뵘(Robert Böhm) 교수를 만나서 공동 사무소 및 9월 워크숍 관련 회의를 하는 것으로 공식적인 파견 업무를 시작했다. 공동 사무소는 Eilenburger Str. 에 있는 라이프치히 응용과학대학(HTWK Leipzig)의 캠퍼스에 설치될 예정인데, 이 장소는 뵘 교수가 근무하는 공과대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현재 육아 휴직으로 쉬고 있는 포닥 사무실을 1달동안 빌려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사무실도 넓고, 전반적으로 다 좋은데... 안타깝게도 대학 내의 무선 인터넷 서비스인 에듀롬(Eduroam)을 사용할 수 없어서 사무실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하다. 이 문제는 주중에 어떻게든 좀 해결을 봐야할 것 같다. 당장 내일 독일 시간으로 오전에 진행할 화상 미팅은 아무래도 집에서 해야할 것 같다.


집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기서는 1달간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빌린 스튜디오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 아파트가 있는 동네는 힙함와 위험함이 20대 혈기처럼 위태롭게 공존하는 곳인데 라이프치히 남부에 코네비츠(Connewitz)라는 곳이다. 건물 벽에 그래피티 칠이 되어 있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이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왜 그리 몸에 문신을 해댄 것인지... 뵘 교수는 우스갯소리로 그 동네야말로 가장 '혁명적(revolutionary)인 곳'이라며, 거리가 화염으로 뒤덮이지는 않나 조심하라고 했다. 그래도 아파트 2층에 들어서자 아늑한 스튜디오 밖으로 펼쳐진 녹음(綠陰)이 환상적이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아파트 주변에 키 큰 나무를 심어서 그런 것이긴 하지만, 보기에 무척 좋았다.


집주인의 간단한 소개를 듣고, 키를 건네받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옷을 갈아입고 캐리어와 가방에 있던 모든 짐들을 일거에 풀어 옷은 옷장에, 속옷과 양말, 기타 물품들을 서랍에 차곡차곡 채워넣는 것이었다. 인천에서 뮌헨을 거쳐 라이프치히로 오기까지 입고 세탁하지 못했던 옷가지들은 전부 소형 드럼 세탁기에 넣어 빨래를 돌렸고, 빨래가 마치기 전 밖으로 나가 오늘 저녁거리와 내일 아침거리, 그리고 간단하게 곁들일 고제(Gose) 맥주도 샀다. 참고로 고제 맥주는 최근에는 라이프치히의 명물로 인식되는 시고 짠(?) 맥주인데, 그 맛이 독특해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 입 마셔보고 대부분 거부하는 맥주이지만, 이상하게 나는 그게 좀 끌리는 것이었다. 남들이 싫어하면 괜히 반발심에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꼭 핀란드의 명물(名物)인 살미아키(salmiakki)와 비슷한 게 아닐까 싶은데, 그닥 끔찍한 맛도 아닌데 다들 왜 그러는지 몰라.


아무튼 이렇게 공식적인 단기 파견 업무의 첫날을 일터와 집에서 바쁘게 보내놓고 나니 불현듯 미네소타로 포닥을 나왔던 2016년 여름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딱 8년 전 이맘때였다.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의 8월 말 여름과 라이프치히의 8월 말 여름에는 밝고 따뜻한 햇살과 그늘에서 느껴지는 선선함, 늦게까지 지지 않는 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8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KIST 입사가 확정되어 한국으로 돌아올 때,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그 느낌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감정을 마주하니 괜히 눈물이 찔끔 나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보다 더 나이 들었고, 커졌고, 경험과 지혜도 더 쌓였지만.


2024년을 시작할 때, 내가 이 시기에 이렇게 독일에 와서 1달간 생활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 보면 선물처럼 주어진 이 파견 생활, 정말 소중하게 뜻깊게 보내봐야겠다. 누군가가 단기 파견을 하게 된다면 김성수 박사처럼 하는 게 가장 모범적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 정도는 해야겠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