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출생 및 육아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공 자궁 이야기가 나왔다. 안전한 출생 및 조절 가능한 신생아 수의 확보를 책임질 수 있기에 앞으로 이쪽으로 연구개발이 많이 진행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였다. 하긴 요즘 학생 수도 적어져서 각 대학 연구실에서 석박사과정 학생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는 얘기를 진짜 심심치않게 듣고 있는데, 어쩌면 낮은 출생률은 암호화폐나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우리 연구자들이 가장 관심있게 봐야 할 사회 문제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공 자궁이 개발되어 출생이 더 이상 생물이 감내해야 할 생명 현상이 아니게 된다면, 출생의 충분조건이 되기에 지금까지 특별한 지위 ㅡ 금기시되거나 귀하게 여겨지거나 부담스럽거나 애틋하다거나한 결합이라는 지위를 보존해 왔던 성관계는 다양한 애정 표현 중 하나인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성관계를 기본으로 구축된 전통적인 형태의 가정은 더 이상 존속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또한 인공 자궁 내에서 발생한 태아에게 생물학적 어머니와 아버지의 의미는 지금의 그것과는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인데 인공 자궁이 출생하는 신생아는 일종의 '공산품'과도 같은 느낌이므로 생물학적 부모가 신생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과거와 절대 같을 수 없다. 


한편 여성은 출생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되기 때문에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만일 육아까지도 전문적인 인공지능이나 국가 수준에서의 돌봄을 통해 가능해진다면 그야말로 여성은 지난 수십만년간 생물학적 이유로 인해 제한되어야 했던 자신들의 가능성을 스스로 실현할 수 있는 기회들을 더 이상 놓치지 않게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이 더 이상 전통적인 체제에 얽매이지 않고 해방되는 것만큼이나 남성들도 해방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묵묵히 희생하며 일하는 가장은 이미 구닥다리 고전 막장극에서나 있을 캐릭터로 치부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회가 오게 되면, 여성이 남성을, 남성이 여성을 선호하고 결합해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어진다. 온갖 충돌과 어긋남을 감내하면서도 가정을 지켜야했던 이유가 과거에는 '자식'이었다면 그런 미래에서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결합을 유지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할 강력한 무언가가 부재할 것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지는 윤리는 폐기될 것이며, 여러 사람이 여러 사람을 사랑하거나 혹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거나 하는 것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생물학적 성에 기반한 사랑이 무의미하게 될 것이니 사회적 성 역시 현재의 이분법에서 크게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그렇게 비관적인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장담하는데 사회적 갈등과 불안 요소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고백하자면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옹호하고 지키기 위해 정말 많은 대가를 치르며 누군가의 희생을, 혹은 희생양 삼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가. 단지 그 사회의 모습이 지금과 너무나도 다르다는 이유로 어딘가 찝찝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하긴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부활한 다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거나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뜻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얼마나 벙쪘을까. 아니, 물론 예수님의 말씀은 저런 지엽적인 것을 얘기하고자 한 것은 아니긴 하겠지만, 천국에서는 결국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어떠한 인간 사회의 관계를 초월한 모습으로 함께 교제하며 살 것인데, 그 모습과 개개인이 독립적인 개체로서 어떠한 전통적인 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채 상호작용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