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후 정신없이 밀린 일을 마치고, 연이은 회식과 음주 뒤에 잠시 시간이 나서 지난주의 학회를 다녀온 소회를 짧게 남기고자 한다. 지난주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태평양 연안 국가 화학회들의 연합으로 조직되어 5년마다 미국 하와이(Hawaii)에서 개최되는 Pacifichem 학회에 다녀왔다. 


이 학회의 존재는 대학원 시절 때 처음 알았는데, 대학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2010년에 지도교수님이 하와이로 국제 학회를 떠난다고 해서 매우 신기해 했다. 마침 위층에 있던 학부 동기가 포스터 발표 차 Pacifichem에 참석했고, 갔다 오면서 기념으로 태평양 느낌이 물씬 나는 술잔을 선물했는데 그것을 보면서 무척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2025년 Pacifichem에 대한 공고는 올해 초부터 줄곧 확인하고 있었는데, 마침 리그닌(lignin) 관련 심포지엄이 있어서 이번에는 내가 하고 있던 연구 주제와 어느 정도 들어맞겠다 싶어서 구두 발표를 신청했고 이게 받아들여진 덕분에 올해의 마지막을 하와이 방문으로 장식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오랜만에 북미쪽 관련 연구자들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7년 전에 KIST에서 처음 뵈었던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Scott Renecker 교수도 그렇고, 6년 전에 ACS에 참석했을 때 셀룰로스 화학 division 내 세션을 진행했던 미시건 주립 대학의 Mojgan Nejad 교수도. 예전에는 그냥 여러 참석자들 중의 하나로서 인사를 나눴을 뿐이지만, 이번에는 구두 발표자와 좌장 혹은 청중으로서 서로 만나게 되어 감회가 무척 새로웠다. 발표 내용에 관심을 가졌던 여러 연구자들과 함께 간단히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리그닌 관련 연구 커뮤니티가 지난 몇 년 새 이들을 중심으로 굉장히 공고해져 있고, 향후 관련 논문 리뷰 및 협업을 위한 주요 연구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게 큰 소득이었다. 아무래도 화학회 쪽 연구자들 중에서는 탄화(carbonization)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관련 연구를 심도 있게 진행하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닷새 간의 강연 중에서 몇몇 '빛나는(?)' 그런 연구들을 발견한 것들도 큰 행운이었다.


학회 일정이 끝나고 해가 지기 직전 호텔로 돌아가 인피니티 풀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혹은 바닷가에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몇 km를 달리고, 아예 해변가로 나가 바다 수영을 즐기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런 거 사실 부산 해운대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굳이 하와이에 와서야 할 수 있었다는 게 좀 기이하긴 했다만... 그래도 우기(雨期)에 매일같이 짧고도 집중적인 비가 이따금씩 떨어지는 동네에서 가끔씩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다만, 물가가 너무 비쌌다. 미네소타에서 생활하던 7~8년 전 물가를 생각하고 갔다가 정말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예전에만 해도 '한국의 아메리카노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다.'라는 명제가 사실처럼 통용되곤 했는데, 지금은 다 옛말이다. 모든 것이 비쌌다. 거기에다가 세금이 붙고, 20% 정도의 팁이 붙으니 지출을 눈덩이같이 늘었다. 하와이의 공기를 흡입할 때마다 과금이 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국제 학회를 나가니 대학원생이 된 기분도 들었고, 이런 경험을 다른 학생 연구원과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국제 학회 때 내가 지도하는 학생과 한 번 같이 나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