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마철인지라 갑자기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놈의 비,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긴장시킨다.
잔디밭에도, 하수구로 흘러가는 길가에도, 그리고 아파트 앞에 있는 6차선 도로에도 빗방울은 떨어졌다. 저기서 걸어오는 사람도 비를 맞고 있고 이쪽에서 뛰어나가는 사람도 비를 맞으며 가고 있었다.
잔디밭에 떨어진 물이야 식물에게는 일종의 밥이 될 것이고, 하수구로 흘러간 물은 정화된 뒤 사람의 식수 혹은 용수가 되겠지. 거 참 수소 두개와 산소 하나로 만들어진 물질은 이 세상에서 대단한 일 해낸단 말이야.
눈을 잠깐 돌렸다. 가만. 아스팔트 깔린 도로 한가운데 떨어진 빗방울은?
글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쓸데없는 생각을 해 봤지만 이 머리를 굴려봐도 언젠가 해가 비쳤을 때 그저 도로 '증발'될 것이라는 판단밖에 서질 않았다. 이럴수가. 기껏 그 높고 높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건만 뭐 한 일도 없이 도로 올라가야 한다니.
글쎄. 그러고보니, 그런 삶도 존재한다. 세상에 태어났는데 그저 잠시 살다가 다시 돌아간다. 사람의 존재를 단순히 육체를 옷 삼아 입고 호흡하는 것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태어난 것은 다 뜻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있듯이 그 인간을 세상에서 기르시는 것도 다 뜻이 있으신 것이고 이미 예정되어있던 그 분만의 뜻이 있는 것이다. 물론 어렸을 때는 모두들 위인전을 읽으며 꿈을 많이 꾸지만, 그러나 점점 커가면서 그저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바라고 만다. 그냥 살기 위해 사는.
하지만. 갈증에 뒤틀리는 나무에게 한 모금의 물이 되어주거나 물레방아라도 돌리도록 지금부터라도 노력하자. 사회에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는 그런 무능한 삶이 되지는 말자.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는 파란만장한 삶을 꿈꾸자.
의미없이 증발되기 싫다. 사람은 순환하는 물처럼 또 한번의 '하강'을 경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잖아?
... 그런데 10년 후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부디 그럴 수 있길. 지금의 나는 그저 그렇게 믿는 순진한 학생일 뿐이다. 세상 잘 모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