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무기화학1과 전자학 및 계측론 수업을 들으면서 뭔가 머리를 댕~ 하고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뭐랄까. 새로운 분야를 너무나도 즐겁게 만끽했다는 기분? 왜 하필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나게 된 거야ㅡ♬ 이런 식이다. (이들 과목에 너무 애정을 쏟은 탓에 양자물리2를 아주 죽 쑤었지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 지금까지는 내가 물리화학을 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위해서 화학과 물리를 함께 공부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왔다, 아니 규정해 왔다. 이론적으로 화학의 세계를 펼쳐놓는 것은 매우 아름답고 또 멋진 일이었기에 열심히 물리학적 기반을 닦아서 나중에 연구를 하는데 큰 보탬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그렇게 생각해 왔다. 물론 물리화학이라고 해서 죄다 이론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화학 실험실에는 실험 연구실도 무척 많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이론적으로 화학을 연구하는 일이 내 소질에 맞아보였고, 또 당시에는 이것이 왠지 구미를 당기는 그런 일이었다.

그런데 3학년이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나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였다. 내가 물리와 화학을 동시에 공부함으로서 내가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분야 하나를 새삼 발견하게 되었으니 바로 그게 Nanotechnology였다. 맨날 주변에서 나노, NT가 어쩌느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줄기차게 들었지만 정작 이것을 내가 공부할 학문적 영역으로는 미처 생각해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노화학은 고전적인 화학분야 구분에는 약간 '엉성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학제간 연구분야인 이 나노과학은 물리학, 화학, 재료공학, 전자공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의 융합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2학기 도중 우리학교 협동과정중의 나노과학기술 과정 사이트에 들어가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참여하신 각 학부, 학과의 교수님들을 보면서 정말 나노과학은 정말 다양한 분야가 한데 섞인 융합과학이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아직 확실하게 깊이 이해되지 않은 영역이지만 발전 가능성도 높고 그리고 인류 생활에 매우 유용한 과학이므로 매우 도전적이고 이상적인 분야라는 것에 금방 매료되었다.

더구나 무기화학1의 백명현교수님이 명강의로 인해 나는 무기화학 내지는 그와 연관된 학문에 무척 관심이 급증했는데 주변의 말을 들어보면 나노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물리 기반이 탄탄하면 좋고 무기화학도 아주 깊은 연관이 되어 있단다. 전자학 및 계측론 수업을 들으면서 실험화학이 계측장비의 제어와 제작, 각종 소자와 회로이론과 깊은 연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무척 흥미로웠다.

사실 어느새 내가 최근 공부하던 화학은 거의 물리학과목처럼 수식과 이론이 난무하던 그런 분야가 되었고 예전 일반화학을 배울 때의 그런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실험을 2학기간 하지 않다보니 정말 말 그래도 책상에 앉아서 줄창 펜을 들고 공부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게 없었다. 그런 물리학적 개념과 수식을 통한 이론의 전개에만 어느새 익숙해져 있던 내게 무기화학 공부는 너무 재미있었고 오히려 그간 얼렁뚱땅 넘어갔던 화학을 다시 바로 세우는 귀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물리학부 전공 과목이지만 전자학 및 계측론 수업을 들으면서 '이런 공대스러운 분야가 이렇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었다니!' 하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론화학을 석박사 때부터 공부하려는 마음은 이제 접었다. 왜나고? 이론은 내가 연구하는 중에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내 필요에 따라 공부하고 파고들 수 있을테니까. 물론 이론화학자처럼 정통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기에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연구를 둘러싼 이론에 대해서 고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해 본다. 20대에 공부하는 것과 4~50대에 공부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20대에 실험과 관련된 지식과 다양한 학제간 연구에 대해 깊이 빠지고, 나중에 이론을 시일을 두면서 연구하겠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다고 이론화학을 낮게 취급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론화학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멋진 학문분야이다. 다만 내 말은 이것을 평생의 무기로서 지금 당장 막 파고들어 전공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

아무튼 나노과학은 그런 면에서 내가 4학년 때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알아 보아야 할 영역인 듯 싶다. 3학년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복수전공을 시작하면서 가지게 된 큰 기도제목은 바로 '3학년 공부를 통해 내가 앞으로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자문자답하게 해주세요'였는데 이제 그 기도가 완결된 듯 싶다. 그제부터 오늘까지 정말 다양한 사이트, 다양한 연구실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면서 정말 얇게 어떠한 것들을 연구하는구나, 어떤 공부가 미리 필요하구나 이런 것들을 알아보았다.

당장 다음해에 수강할 과목들을 바꿨다. 그리고 4학년 때에는 연구실에서 생활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이전까지는 도대체 어디를 들어가야 하나 정말 망설였지만 지금은 그 범위를 대폭 축소시킬 수 있었다. 조만간 학교에 가게되는데 시간이 된다면 나노화학, 나노물리에 관한 책을 몇 권 사야겠다.

사람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야!' 하는 것을 발견할 때 크게 환호작약하는데 요즘 그런 기분이었다. 서울대학교 입학면접고사 중 화학 가장 마지막 문제가 TOPO(트라이옥틸포스핀 옥사이드)를 사용하여 CdSe 나노 입자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는데 이 내용을 촤근 인터넷에서 찾아본 나노 과학 관련 글에서 발견하고 크나큰 뿌듯함과 뭔지 모를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이 이야기를 외숙부에게 처음으로 이야기했더니 매우 잘한 결정이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앞으로 공부해야 할 것들이 다른 방향으로 대폭 늘었다. 우선 컴퓨터공학에 더 큰 관심을 쏟아야겠고, 현재 진행되는 나노관련 과학에 대해 아는 바가 사실 전무하기 때문에 저널이나 잡지 등을 읽어보면서 감각을 키워야겠다. 사실 조만간 에스파냐로 떠나야 하지만 학기가 곧바로 시작헀으면 하는 그런 열망마저 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