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오랜만에 간 경복궁(景福宮)>
오늘은 정말 비가 많이 온 날이었다. 물론 저녁에는 비가 오지 않아 저녁에 밖에 잠깐 나갔을 땐 '오, 시원한데?' 싶기까지 했지만 말이다. 왜 하필이면 경복궁 주변을 서성일 때 그리도 비가 쏟아졌냔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경복궁에 갔다. 정오에 영미와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만나 곧장 경복궁으로 향했다. 스페인에 다녀온 이후로 서울 구경 좀 제대로 하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이제야 그 첫걸음을 하는구나. 그런데 영 쉬운 길은 아니었다. 삼청동 길을 걸으며 구경도 좀 하고 밥도 먹으려고 했더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게 아닌가. 진짜 홀딱 다 젖고 말았다. 겨우겨우 찾아간 칼국수 집에서 배고픔을 달랜 후에야 경복궁으로 다시 향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광화문 복원 공사가 한창이고 대부분의 궁궐 복원 공사가 진행중이라서 완전한 고궁의 모습을 살펴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게 몇 년만에 찾는 경복궁이냐. 예전의 기억이 잘 살아 있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오랜만에 가 본 경복궁의 모습을 보고 생각보다 너무 좋은 경복궁의 모습에 감탄했다. 아, 우리나라의 궁궐도 꽤나 아름답고 멋진데?
일종의 편견이 자리잡았던 것이다. 한국의 궁성은 낮고 작고 볼품이 없다. 하지만 오늘 근정전을 보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 본 이후로 처음으로 이렇게 직접 마주하는 것 같았는데 어찌나 웅장하던지, 어찌나 아름다운 단청들로 장식이 되어 있던지! 근정전 내부는 사극에서나 볼 것 같은 내부 구조로 잘 장식되어 있었고 사람만 앉힌다면 다시 조선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교태전, 강녕전, 건청궁 등 사극에서 수이 들어와 익히 알게 된 이름들이 현판에 쓰여 있는 것을 보며 '아, 저건 저거구나' 싶었다.
경복궁 주변 자연환경이 그렇게 수려한 지 몰랐다. 궁을 은은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인왕산과 북악산의 시선이 느껴졌다.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 자리만큼 명당도 없었을 터. 세종로에 밀집한 고층 빌딩들도 궁에서 바라보면 어색하거나 부조화스럽지 않고 멋있기 그지 없다. 외국인들도 신기해 할 터이다. 어떻게 이렇게 엄청나게 현대적인 거리와 건물들 사이에서 완벽히 고전적인 옛 궁궐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느냐.
경복궁 내에 건물들이 생각보다 좀 많다고 생각했는데 원래는 이보다 몇 곱절 많았다고 한다. 문제는 일제 강점기였는데, 일제가 85% 정도의 경복궁 궐내 궁성을 모두 훼파시켰다는 설명을 듣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어찌나 아쉬웠는지. 물론 수백년 된 목조 건물이 그 굴곡진 역사를 겪어오면서 온전히 그대로 서 있기를 바란다는 게 무리이긴 하다.
비단 일제의 횡포 뿐 아니라 임진왜란, 화재, 천재지변 등으로 인해 궁궐이 수난을 당한 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것은 고립된 암자와 같은 건물이 아니라 일국의 상징이자 중심인 궁궐이란 말이다. 일을 겪어도 산전수전 다 겪었을 것이다. 스페인처럼 수백년 묵은 건물이 여전히 서 있듯이 경복궁도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만 사실상 그게 힘든 것을 알기에 하루빨리 잃어버린 경복궁의 온전한 모습을 빨리 되찾았으면 좋겠다. 보수할 것은 보수하고 복원할 것은 복원하고.
비가 많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을 구경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대다수가 외국인이었다. 십수년 전과는 다른 풍경이다. 좋아, 우리나라도 이렇게 점점 우리의 유산을 홍보하고 또 정비해서 관광할 만한 멋진 나라로 발돋움해야지.
내친 김에 국립고궁박물관의 전시품까지 모두 다 보고 헤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아무래도 가장 마지막에 본 자격루인데 자격루는 세종의 명으로 장영실이 제작한 물시계로 스스로 시간을 알리는 영리한 시계로 교묘한 작동방식과 정교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게 하였다. 마침 들어가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신(申)시에서 유(酉)시로 바뀌는 시간이 되었는데 구슬이 굴러가더니 징이 댕~ 치면서 申이라고 시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목각 인형이 교체되면서 어느새 酉를 들고 있는 인형이 눈앞에 보이게 되었다. 오, 신기해! 정말 머리가 좋아!
돌아오는 길에 내내 졸았지만 경복궁을 즐기는 내내 결코 피곤하거나 재미없지 않았다. 오랜만에 고궁 여행, 매우 즐거웠다. 한국의 유산이라서 더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를 자주 가져야지 :)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