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 배수구에 머리카락이 잔뜩 끼어있었다.
처음엔 그냥 다음에 청소해야지 했다.
그런데 욕조와 변기에 찌든 때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냥 다음에 청소해야지 했다.
이제는 세면대에 그득히 낀 기름 때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써 외면하며 다음에 청소해야지 했다.
화장실 바닥 타일 사이가 어느새 노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앞으로는 바닥을 보지 말아야겠다 싶으며 세수를 하고 있었다.
세면대에 고인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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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날 밤, 옷을 다 던져 버리고 고무장갑 끼고 전선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Mission 1. 찌든 때 제거
가장 쉽게 보이는 적인 찌든 때는 아군의 위대한 세정제 장군을 뿌려주기만 하면 금새 그 조직이 와해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솔로 박박 문질러서 결국 모두 몰살시키는 데 성공! 화학의 힘이다 :)
변기와 욕조, 세면대에 '테'를 그리며 서식하던 적들을 일거에 소멸시킬 수 있었다 :) 게다가 화장실 바닥 타일 사이의 협곡을 잠식해가던 찌든 때 세력도 모두 몰아내는 데 성공~
Mission 2. 머리카락 제거
부모님께서 저 멀리 남아공으로 가신 뒤, 머리에 붙어 있지 않은 머리카락은 정말 쓰레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 방바닥, 욕조, 세면대, 화장실 바닥 등등 그들의 세력이 안 미치는 곳이 없었다.
머리카락 제국의 병사들은 정말로 강력하다. 길이도 그 어떤 쓰레기보다 길고, 변화무쌍한 형태를 가졌다. 다만, 이들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물대포 한방이면 자기들끼리 엉겨서 '일망타진'할 수 있다는 것. 이 역시 아미노산과 물 분자간에서 일어나는 화학의 힘이다. :)
결국 오늘도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수십문의 물대포 덕분에 머리카락 수십개가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수 있게 되었다.
Mission 3. 최대의 난적, 막힌 관 뚫기
세면대 물이 안 내려갈 때에는 S자형 관을 통째로 빼내서 씻어주어야 한다. 관이 S자인 것은 나름 과학적인 이유가 있는데, 관 내부에 고이게 되는 물이 자연적인 '마개'를 형성해서 냄새나 벌레가 하수구에서 올라와 세면대로 나오는 대형 참사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화학 선생님이 강조하시듯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이 있는 법. I자 관이면 막힘이 없겠지만, S자형이면 자주 막힌다. 그 밑에 여러가지 물질들이 침전되고 쌓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 내부를 우리가 내시경을 넣어 보지 않는 한, 도무지 관이 어떻게 막혀 가는 지 알길도 없다. 욕조 찌든 때는 눈에 보이기라도 해서 제 때에 인지하기라도 하지.
아무튼 오늘 S자형 관 빼내는 데 엄청 고생했다. 나사를 반대로 돌려서 괜히 힘만 낭비하질 않았나, 화장실 벽 쪽의 콘크리트도 유실시키고... 에잉... 이사하기 전 아파트에서는 잘 되었는데 말이다ㅡ.
아무리 어려운 Mission들이었다 해도 시작한 건 끝을 보는 우리 남매. 결국 화장실을 때와 어둠의 세력들로부터 구원하는 데 성공! 이미 하루가 지나간 뒤였다 :)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