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용서 받지 못한 자'라는 영화를 집에서 OCN을 통해 봤다. 주연배우인 서장원 ㅡ 중견 배우 서인석의 아들! 세상에. ㅡ 과 하정우를 처음 보는 나로서는 음.. 처음부터 '이건 독립영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고나 할까나.
참, 민간인인 나로서는 내가 만일 입대를 했다! 이러면 어떤 삶이 전개될 지 도무지 알 턱이 없지만, 이 영화에서 이승영이 외치는 말들이 내가 다 내뱉었던 말이라서 섬뜩했다. 사실 그래서 채널 돌리려다가 끝까지 다 보고 말았다.
그런데 영화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전화가 왔다. 033으로 시작하는 번호ㅡ. 이제는 익숙하다. 강원도의 한 군인 ㅡ 굳이 표현하자면.. P2라고 하자. (왜 P2냐? P1도 있으니까;;) 아무튼 기분 참 묘했다. 하필이면 군대와 관련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이병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게 거 참.. 그래도 영화는 절정을 지났으므로 굳이 똑똑히 대사를 듣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어떻게 흘러가는 지 다 알 수 있었다.
이게 아마 4일 연속 군인과의 통화인 듯 싶다. 토요일에는 L, 주일에는 부재중 전화로 찍힌 P1, 월요일에는 K, 화요일에는 J, 수요일에는 P2였던 것이다. 게다가 오늘은 한 병장의 편지도 도착했다.
군인과의 통화는 대개 10분 정도이다. 물론 예외도 있긴 한데 그건 사람들 특성에 따라 다르다. P1와 J는 5분을 넘긴 적이 없으며, L은 최고 30분까지 통화한 적도 있다. 통화의 시작도 다르다. P1과 P2는 033, L은 02, K는 031, J는 041이다. L은 항상 '나다'로 시작하고, P2는 항상 욕으로 통화를 시작하며, P1은 위장된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하는 것을 즐긴다.
이들 중 둘은 1주에 1번씩은 전화가 오고, 하나는 격주 혹은 3주에 1번씩 전화가 온다. 이외의 군인들은 정기적이지 않다.
전화 외의 통로는 편지이다. 나는 편지를 많이 쓰지는 못했다. 특히 1,2학년 때에는 편지를 아예 쓰지도 않았다. K가 들으면 매우 섭섭할 내용이긴 하지만 그 때는 군인에게 편지를 쓴다는 게 썩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며 지내던 3학년 1학기 어느 날 집으로 배송된 J의 편지 한 통을 보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지금까지 보낸 편지는 6통 정도되던가?;; 내일 편지를 하나 부칠 예정이고, 글쎄, 내가 노력을 별로 못 해서 편지를 많이 못 쓴 것 같다. 혹자가 말하길 내가 편지를 쓰는 게 온당치 못하다고 한다. 말인즉 남자가 군인에게 편지를 써 주는 건 '여유, 할 일 없음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며 군 내에서도 남자에게서 받은 편지는 매우 찝찝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전혀 귀담아 듣지 않는다.
영화가 끝날 즈음부터 시작된 P2와의 통화 도중 갑자기 낯선 사람의 목소리, 아니 관등성명이 이어진다. 뭐? 뭐라고? 어디서 P2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런, 수화기에 대고 관등성명을 하라고 시켰다고?
내가 군 생활을 전혀 겪어보지 못했기에 가끔 소통의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그 생활상이나 사고방식은 가끔 나를 경악하게 만들거나 떫떠름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군인들의 전화는 충격과 공포이다.
신병으로 아주 고생하던 애들이 갑자기 후임이 생겼다고 말하거나 곧 진급한다고 한다. 이래서 가끔 군인들의 전화는 달력이다.
휴가 나온다고 언제 보자고 한다. 이 때의 군인들의 전화는 회장님 스케쥴 조정을 권하는 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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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의 전화는... 50%의 친근함과 30%의 즐거움과 20%의 그리움이 뒤섞인. 거기에 약간의 불순물같은 애환과 근심이 첨가된 목소리의 통로랄까나... 수신자의 목소리를 잠깐동안 100% 그리움으로 가득차게 만드는.
뭐, 그런 게 어딨어, 군대면 다 그런 거야?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