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손가락이 모두 말이 아니다. 글을 쓰려고 자판을 두들기면 손가락 끝에서 알 수 없는, 아니 표현할 수 없는 가벼운 통증들이 욱신욱신 거린다. 손가락이 욱신거린다는 것이 영 이상하긴 하다.

발단은 이렇다. 어제 야깅 전에 충동적으로 하농 연습곡을 치기 시작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60개의 연습곡. 쇼팽의 에튀드는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음악이지만 하농의 연습곡은 똑같은 연습곡이더라도 정말 반복의 황제, 어느 피아노 학원에서나 끔찍하도록 들을 수 있는 저주의 음악(?)이다.

안 그래도 가운데 손톱이 요리 부상으로 인해 날아간 지경인데 메트로놈에 맞춰놓고 하농을 열심히, 정말 열심히 치다보니까 이거 왠지 처음부터 과하게 음식을 먹은 기분이다. 손톱 양 끝부분이 꼭 부은 것 같기도 하고.

사실 1번부터 38번까지 거의 쉬지 않고 달려갔다. 물론 내 책이 아주 오래되어서 8번부터 11번까지가 유실되었긴 했지만. 그리고 내친김에 60번 트레몰로까지 한번 다 쳐봤다. 죽는 줄 알았다.

하농이 과학적인 연습교본인지 논란은 있지만 아무튼 제대로 된 자세로 꾸준히 연습한다면 손가락, 특히 왼손의 약한 3-4-5 손가락과 오른손의 4-5 손가락에 힘이 실릴 것 같다. 그리고 팔과 손목, 어깨의 힘은 자연히 빠지게 될 것이고. 마치 자판을 치듯이 부드럽게 피아노 건반을 때리는 것이다. :) 오, 이거 괜찮다.

한창 치고 있을 때 왼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마치 발악하듯 연습곡을 치게 되지만, 글쎄 힘이 달려서 그런 걸 어쩌겠니, 힘을 키워야지, 힘을!!

오랜만에 바르토크 미크로코스모스도 꺼냈다. 내가 생각했을 때 현대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1학년 서음이 강의 때가 아니라 바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이 바르토크를 통해서가 아니었을까? 내 나이 11살에 이 곡집을 접하고 엄청난 충격에 사로잡혔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박자는 우리가 흔히볼 수 없는 박자이다. 조는 자기 멋대로이다. 그 뿐이 아니다. 변박과 변조는 흔하고 조화롭지 못한 화음과 선율, 뭔가 쌩뚱맞다는 느낌만 가득 드는 진행. 아무리 연습곡이라지만 너무 심했다. 게다가 헝가리 태생인 바르토크가 가끔 연습곡에다 가사처럼 적어둔 헝가리어는 과거 유럽 여행 때 하늘 위에서 쳐다 본 부다페스트의 전경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미크로코스모스는 총 6권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미 3권까지는 잔인하게 찢겨서 유실되었기 때문에 하릴없이 4권부터 쳐보는 수 밖에. 한 곡당 2분이 채 안되는 짧은 길이의 연습곡이지만 그 엽기적인 연습곡들의 진행 속에서 그저 어린 마음은 짓밟히기만 한다. 아아, 연습곡 좀 예쁘게 쓰지 그러셨나요.

예를들면 Major and Minor (103번)의 경우 오른손은 B Major, 왼손은 A Minor 스케일을 가지고 선율을 구성한다. 서로 메기고 받기도 하며 유니즌을 구성하기도 하는데 처음 하면 무척 당황스럽다.

Harmonics(102번)는 더 기상천외하다. 왼손의 화음은 수 마디동안 유지되는데 건반 소리가 나지 않게 누르고 있어야 한다. 오른손이 왼손을 넘어갔다 왔다 하면서 격동치는데, 이 때 소리 없이 누르고 있는 왼손의 건반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걸 배음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꽤나 과학적(?)으로 기획된 연습곡이 아닌가.

그래도 사실 이 미크로코스모스는 계속 이어서 연습하기는 무척 힘들다. 하농처럼 무작정 반복 고고라면 몰라도 이건 정말 내 정신이 혼미해지는 그런 세계가 있다. 정말 곡집 제목 만큼이나 '소우주'가 펼쳐지는 그런 연습곡이랄까...

내일 오랜만에 재즈피아노 수업을 듣는다. 에고. 그간 이곳저곳 여행다니느라 연습도 제대로 2주간 못했는데, 괜찮을라나? 아니, 나름 했는데. 거 참...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