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한국어가 되는 자리를 잡았다~! 이게 왠일이더냐~ :)

지금 여기는 살라망까 대학의 한 건물인 Edificio de San Boal의 4층에 있는 인터넷 이용실. 여전히 사람은 많지만 시험이 대부분 끝나서 그런지 전보다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도 오늘로 모든 시험이 끝났다. 그래봐야 시험 2개에 리포트로 대체된 과목 하나였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이제부터는 정말로 수업을 즐기면서 들을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제 남은 수업일수는 단 이틀 뿐. 무척 아쉽다.

오기 전에 우체국에 들러서 지금까지 산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 소포로 보냈는데 가격이 무려 총 35€! 약 4만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가격이다. 세상에, 이렇게나 비쌀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언제 도착할 지, 아니 제대로 도착하기는 할는지도 모르는 이 불확실성을 안고 이렇게 돈을 들여야 하는지 나원 참.

1시간 뒤에는 Salas de Actos에서 스페인 영화계의 거장 Pedro Almodovar의 80년대 영화 중 하나인 'kika'를 상영해준다고 한다. 지난 주 수요일에는 그의 다른 영화 'entre tinieblas'를 봤는데 내용이 영 기가 막히는 것이었는지라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들어가기 전에 시놉시스를 제대로 탐독하고 들어가야지. 보통 일상에서 스페인어를 듣는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내가 자막도 없이 스페인어로 된 영화를 본다는 건 사실 넌센스이다. 다만, 스페인에서 스페인 영화를 본다는 것에 의의를 둘 뿐? 흑흑.

그러고보니 요즘 스페인은 영화 때문에 한창 시끌벅적하다. 중남미 작가 Gabriel García Marquez가 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영화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뉴스에도 하루에 한 번씩 꼭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방영된다. 남자 주연 배우가 스페인 사람인데 (시상식이 파행으로 치닫긴 했지만) 골든글러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이번주일에 영화관에서 한국 친구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앨빈과 다람쥐들'이라는 다소 가벼운 영화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고? 놀랍게도 스페인 영화관에서 국내외영화 모두 스페인어로 더빙되어 상영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더빙보다는 원어+자막을 선호하는데 이 나라는 전혀 자막이 없다. TV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doblada(더빙)뿐이다. 다행히도 '앨빈과 다람쥐들'은 귀로 알아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마치 남아공에서 '박물관은 살아있다'를 본 것과 비슷한 예랄까.)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일주일도 안 남았다니 솔직히 믿기지가 않는다. 난 요즘 내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맹추위를 이겨내며 무기화학이나 전자회로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서울대 화학부 학생이었다는 사실이 왠지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귀국하면 당장 수강신청을 위해 '고분자화학개론' 이런 것들에 다시 익숙해져야 하는데 말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Sung-soo, 혹은 Pablo(여기서 얻게 된 스페인어 이름. 성경에 나오는 바울이 스페인어로 Pablo이다.)로서 짧은 스페인어 실력을 가지고 있긴 했어도 용케 살라망까 대학에서 3주간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비행기값과 교통비, 기타 체류비를 모두 합쳐서 결코 만만치 않은 돈을 들인 1달간의 여행, 스페인어 공부, 스페인 문화 체험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야 당연히 편하지는 않았으나, 결코 후회스럽지 않고 이 1달을 통해 너무나도 얻은 것이 많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해외 여행을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나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것이 한 나라에서 오랜 기간 생활을 하는 그런 여행을 하자는 내 여행 모토에 부합했다는 점, 무턱대고 영어만 믿고 유럽 여행을 다니는 것과는 달리 스페인에서는 최대한 스페인어로 생활했다는 점(재미있게도 스페인에서 내가 지금까지 배웠던 다섯 언어를 모두 조금씩이라도 써먹을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혼자서 여행을 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나는 여기서 정말로 수업을 들은 학생으로서 배워가는 것들 ㅡ 이를테면 스페인어 회화, 문법, 그리고 스페인 예술 ㅡ 이 있지 않은가! 졸업을 1년 앞둔 '화학부' 학생에게 이것은 너무나도 위대한 경험이리라 :)

나는 좀 약간 능청스러워졌다. 여기는 나 자신을 어필하지 못하면, 그저 고요히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는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한다'라는 생각이지만 이곳은 '가만이 있으면 반도 못 하는 거다'라는 그런 느낌? 어차피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 짧은 기간동안 잠깐 보고 다시는 못 보게 될 가능성이 99.9999999999999999999%인 사람들이 아닌가. 안 되는 스페인어로라도 부던히 말을 걸고, 수업 시간에 모르는 것은 대뜸 묻고, 이거 먼저 내가 하겠다고 손가락을 치켜들고(스페인에서는 자기가 하겠다는 의사 표시로서 손을 번쩍 드는 것이 아니라 인지 손가락을 치켜 든다.), 웃고, 인사하고 그렇게 지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건 정말 한국의 어느 곳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또다른 '나'였다.

금요일에 모든 수업이 끝나면 작별인사를 하고 마드리드로 떠날 예정이다. 마드리드에서 약 3일간 체류한 뒤 28일 새벽 비행기를 타게 되고 다음날 아침에 인천에 도착하겠지. 언젠가 스페인에는 다시 올 것이다. 그 때에는 좀 더 완숙한 감각과 느긋한 마음으로 이 나라의 땅을 밟으려고 한다. 언젠가는. Otra vez.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