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문제를 바라보는 또다른 시선은 바로 기독교이다. 동방 정교회 세계가 혼란스러웠던 16세기, 브레스트 연합(Берестейська унія)을 통해 로마 가톨릭 교황과 일치할 정도로 정교회와의 상통이 소원해졌던 우크라이나 교회는 페레야슬라우 조약(Переяславська рада)을 통해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동부를 차지한 모스크바 차르국의 영향에 점차 놓이게 된다.


본래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의 세계총대주교청에 속했으나 당시 정치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가까웠던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의 영향력은 매우 강했다. 수많은 정교회 성직자들과 수도사들이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지키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오스만 제국 통치 하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청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모스크바 차르국과 긴밀히 협력하며 우크라이나 동부를 관리하던 자포로자 코자크(Запорозькі козаки)의 강력한 압박 속에 1685년 새롭게 키이우 수도대주교 자리에 오른 헤데온(Гедеон)이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으로부터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러시아 정교회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은 우크라이나 정교회 구성원들에게 두고두고 문제가 되었고,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우크라이나가 정치적 독립을 달성할 때마다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애를 써 왔다.


먼저 러시아 제국이 혁명에 의해 전복되자 1917년에 독립을 선언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발걸음에 맞춰 1921년에 키이우에서 주교회의가 소집되었고 여기서 최초로 러시아 정교로부터 독립하고 자치 교회를 수립하는 것이 결의되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교회가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Українська автокефальна православна церква, УАПЦ; 영어로는 UAOC)였는데,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이 1921년에 다시 폴란드와 소련에 의해 재병합되는 바람에 소련의 무자비한 종교 정책 하에서 UAOC 구성원들은 큰 핍박을 받았고, 나치 독일 점령 하에서 다시 살아났다가 곧 소련이 재점령하게 되면서 그 세력은 우크라이나 땅에서 사실상 퇴출되어 해외를 떠돌게 되었다.


한편 소련이 붕괴되고 난 뒤 1992년 우크라이나 공화국이 독립하면서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산하에 있던 우크라이나 성직자들이 다시 러시아 정교회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고, 그렇게 탄생한 교회가 우크라이나 정교회 - 키이우 총대주교청(Українська православна церква Київського патріархату, УПЦ-КП; 영어로는 UOC-KP)이다. 이 정교회는 여전히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산하에 남기로 결의한 다른 정교회, 곧 우크라이나 정교회 - 모스크바 총대주교청(Українська православна церква Московського патріархату, УПЦ-МП; 영어로는 UOC-MP)와 대립하고 있었다.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UOC-KP와 UOC-MP 성직자들은 서로 반목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 교인들은 딱히 구분을 두고 적대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관계가 점차 험악하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4년에 러시아가 단행한 크림 반도 병합. UOC-KP는 크림 반도에 있던 수십 개의 본당에 대한 사목권을 상실했는데, 이 때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반(反)러 진영은 UOC-MP를 러시아 정교회의 앞잡이로 여기기 시작했고, 친서방정책과 민족주의로 기울던 우크라이나 정치권에서는 UOC-MP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주의적인 성격의 일환으로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던 UAOC와 UOC-KP를 해체 및 통합시켜 2018년 새로 우크라이나 정교회(Православна церква України, УПЦ; 영어로는 OCU)를 발족시킨다.


문제는 이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통합과 발족을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청이 인준하고 독립 교회로서의 지위를 선언한 데서 비롯되었다. 아직도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산하에 남아 있는 UOC-MP가 우크라이나 땅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가 월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한 러시아 정교회는 자신들의 적법한 관할 하에 있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립은 무효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 15일, 주교회의를 열어 모든 러시아 정교회의 구성원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의 관할 하에 있는 교회에서 베푸는 성체성혈성사, 세례성사, 결혼성사에 참여하지 말 것을 천명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모스크바 간의 완전한 상통관계가 깨진 이것이 바로 정교회 세계의 2018년 분열이다.


우크라이나의 관할권은 어디에 있는가? 우크라이나 땅과 교회라는 것은 원래 러시아 땅과 교회의 부분 집합일 뿐인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놓고 오랫동안 이어진 긴장 상태가 기어이 2022년의 전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볼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