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싶었더니 정말 이상이 있었던 것이었다. 점심에 갑자기 관리사무소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아래층에서 보일러실 누수 신고가 들어왔단다. 아뿔싸, 어제 보일러 응축수 배출 관에서 자꾸 물이 똑똑 떨어지더라니 그게 수습이 안 되고 계속 물이 샜던 것인가?


조금 일찍 퇴근해서 보일러실로 달려갔다. 보일러에서 새어나오는 물방울은 어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경쾌하게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고 일단 낙수 위치에 동이를 두어 더 이상 보일러 물이 아래 층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임시 조치를 해 두었다. 하지만 내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없는 일인 것을 파악한 나는 바로 보일러 겉면에 붙어있던 A/S 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기사님이 오늘 일을 마치기 전에 바로 집에 들렀다 갈 수 있다고 하셨다.


10분 뒤에 바로 기사님이 오셨고, 보일러 뚜껑을 열어서 내부 확인을 시작하셨다. 재작년에 교체되지 않은 곡관, 소켓 등 플라스틱 부품들이 이미 망가져 있었다. 기사님 말씀으로는 보일러 설치 후 단 한 번도 교체되지 않아 내구 연한을 훨씬 넘긴, 아주 노후한 부품들이라고 하셨다. 부품들을 떼어 교체할 새 부품과 비교해보니 상태가 정말 처참했다. 이 상태로 보일러를 지난 겨우내 틀었다니 그게 더 신기할 지경이었다. 아, 그래서 분명 물보충을 했는데도 몇 주 지나지 않아 다시 물보충이 필요했던 거구나. 온수가 나왔다가 다시 냉수가 나왔다가 반복하던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최종 점검을 마치고 보일러 겉면을 다시 결속시킨 뒤 상태를 살펴보았다. 물방울이 더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온수가 나오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기사 아저씨는 오래된 보일러긴 하지만,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요즘 보일러보다는 구리로 만든 옛날 보일러가 훨씬 좋은 거라며 향후 문제가 생기면 또 연락을 달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부품 교체 값으로 70,000원을 송금해드렸고, 해당 상황과 이체 금액 전부를 갈무리해서 집주인에게 문자로 전달한 뒤 전화로 상황을 모두 설명해 드렸다.


누수로 인해 아랫집 벽지나 가전제품에 문제가 생겼으면 어쩌지 싶었는데, 아직까지는 별다른 이상을 얘기하지는 않으셨다. 부디 별 문제 없기를... 아! 한가지 코미디같은 사실은, 아래층에 전에 살던 집이 이미 이사를 나가고 지난주 목요일에 다른 가정이 새로 입주하셨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깨달았다는 것이다. 누수를 발견한 것도 새로 이사오신 아주머니가 보일러실 리모델링 후 이사온 첫날부터 배수관에서 물이 자꾸 새길래 그걸 신고한 것이라고...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전달 못해 얼려놓았다던 이바지떡을 내게 주시면서 리모델링 때문에 그간 시끄럽지 않았냐고 물으셨는데, 나는 그저 멍... 진짜 이런 식이면 하루 아침에 윗집 옆집 사람이 바뀌고 경사가 있든 무슨 문제가 생겼든 전혀 모르고 1년 365일을 살 듯 싶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