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었던 어제, 아침에 일어나 가정예배를 드린 뒤 떡국을 먹고, 아버지와 함께 시흥의 군자봉까지 등산을 다녀온 뒤 스파게티를 해서 부모님께 대접했다. 피곤함이 몰려와 한 1시간 반 정도 낮잠을 청한 뒤 일어나서 DELE B1 공부를 좀 하다가 거실에 나가보니 아버지께서 요즘 재미있는 영화가 있으면 좀 보자고 하신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의 영화 취향은 굉장히 까다롭고 불가해한지라 좀체 그분의 입맛에 들어맞는 영화를 찾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우선 우리 아버지는 한국 영화를 극도로 혐오(!)하신다 ㅡ 사실 한국 영화뿐 아니라 한국 국적의 작가가 생산한 문화 상품이라면 일단 하급으로 치시는 기이한 자기혐오적(?) 기질을 지니셨자. 그래서 외화를 찾아보니... 이 설 특수 기간에 개봉한 외화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이나 TV를 통해 영화를 대여해서 보자는 합의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무슨 영화를 볼 것인가? 나는 재빨리 2020년 아카데미상 시상식 후보작을 스캔하기 시작했고, 거기서 처음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골랐다. 아버지의 영 떨떠름한 표정.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영화라고 그렇게 홍보를 해 줘도 외화를 간절히 바라는 그의 표정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아이리시 맨(Irish Man)'은 어떨까,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집 채널 제공자인 B TV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영화목록에 없었다. 그렇게 찾다 찾다 하나 얻어 걸린 것이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최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유명한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의 집에서 일어난 실제 참극을 재미있게 비틀어 탄생시킨 이 영화는 내가 지금까지 봤던 영화와는 틀과 전개 방식이 모두 달랐다. 이 감독이 워낙 유명했기에 영화가 보통은 아닐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나 골을 때릴 줄은 몰랐다. 그러나 화려한 캐스팅과 멋진 연기는 일품이었다. 우리 아버지도 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Leonardo DiCaprio)를 다시 봐야겠다며 ㅡ 이 시점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외화만 찾는 사람이 어찌 그런 기본적인 사실도 모르고 지냈냐'며 빈정댔다. ㅡ 감탄을 금치 못하셨다. 중간에 등장하는 다소 잔혹해보이는 장면에서는 아버지가 고개를 돌리셨지만, 화염방사기 신에서는 나와 부모님 모두 장면의 끔찍함과 황당함, 그리고 저급하게 외쳐진 대사의 번역 문구에서 느껴지는 민망한 웃음이 한데 어울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일시 공유했다.


놀랍게도 부모님은 B TV를 통해 영화를 본 게 이번이 처음이라도 했다. 나는 가끔 구글 무비를 통해 영화를 대여해서 보곤 했는데...앞으로 시간이 되면 가끔씩 이렇게 영화를 빌려 보시라고 권해드렸다. 4,400원에 셋이서 이렇게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얼마나 싸고 편했던지 원! 우리집은 그렇게 경자년 새해를 맞이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