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대학 방학도 맞이했고, 경자년 새해도 맞이했는데 과연 어떤 프로젝트(?)를 실행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미루고 미뤄왔던 일을 시작하자고 마음 먹은 것이 바로 방안에 성무일과(聖務日課, Daily Office)를 하기 위한 공간을 작게나마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전구로 켜지는 전기초와 싸구려 촛대, 그리고 교회에서 사 온 십자가를 올려놓고 독서대에는 성경을, 그리고 그 앞에 기도서와 성가책을 놓고 그 앞에 방석을 하나 깔아놓으니 제법 그럴 듯한 기도 장소가 마련되었다.


장소만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아침에 일어나서는 한 7시 반쯤에 구약을 1독서로 하여 아침기도(朝禱, Morning Prayer)를, 퇴근해서는 씻은 뒤 한 10시쯤에 서신서를 1독서 및 복음서를 2독서로 하여 저녁기도(晚禱, Evening Prayer)를 진행했다. 감사성찬례나 교회에서 진행하는 저녁기도 때와는 달리 기도서에서 다양한 기도를 고르고 송영곡도 이사야의 둘째 송가처럼 좀체 교회에서 안 부르는 것을 기도서의 추천대로 골라 진행했는데 꽤나 새로운 느낌이었고, 참 그 기도문들이 많은 분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된 멋진 문장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각각 30분 정도 걸렸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엄청 빠르게 지나갔다. 기도 전과 독서 후에는 송영 전에 2분의 명상 시간을 두어 MindBell 앱으로 종소리가 나게 했는데, 하루 종일 실험 설명, 레오미터 교육, 그리고 논문 수정 편집으로 정신 없던 내가 과연 수면 시간 빼고 유일하게 고요함을 누린 시간이었다. 오늘 저녁기도 1독서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단 한번의 희생제물로서 자신을 드린 예수가 주제였다. 전염병의 공포가 세계를 뒤덮는 2020년의 오늘, 예수의 죽음이 과연 그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을 것인가?


일이 바빠지고 야근이 많아질수록, 그리고 출장이 잦아지게 되면 성무일과를 제때 지키는 것이 좀 어려울 것 같긴 하다. 게다가 할 일도 많은데 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기도를 한다는 것은 조금 시간이 아까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수입의 1/10을 제대로 교회와 사회단체에 바치고도 나머지 몫으로 충분히 한 해를 넉넉하게 살아왔던 2019년을 되돌아보면, 시간의 측면에서 24시간 중에 1시간 정도 성무일과에 쏟는다고 해도 남은 23시간으로 충분히 하루를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ㅡ 사실 이게 성무일과 공간을 만들고 직접 실행해보자는 직접적인 동기였다. 나는 수도자도 아니고 성직자도 아니지만, 내면의 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첫걸음이라고 믿고 싶다. 열심히 힘닿는 데까지 해보고 다음 설날에 이를 평가해 봐야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