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세를 두고 하는 얘기를 듣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19의 위세가 언젠가는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며, 그에 따라 세계 질서는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복구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십수년 전 SARS나 수년 전 MERS 때도 그러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다소 비관적이다.


사회의 변혁은 토머스 쿤(Thomas Kuhn)이 설명한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과 비슷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에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올바른 교육, 그리고 그 결과 이룩한 사회문화적 성숙을 통해 사회가 점진적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식의 발전은 정상과학(normal science) 내에서의 발전만큼이나 굉장히 제한적이고 미미하다. 오히려 격변하는 사회 현상이 사회의 진화 ㅡ 여기서 진화는 가치중립적 단어이다. 진보도, 퇴보도 모두 진화의 단면들이니까 ㅡ 를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고, 이는 패러다임의 변화로 인해 기존의 과학으로부터 새로운 과학(new science)이 탄생하는 것과 비슷하다. 마치 여성인권의 신장처럼 말이다. 여성인권의 신장에 헌신한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함성, 고통과 노력이 결코 가벼이 여겨져서는 안 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여성인권이 급격히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여성의 노동, 생산성, 사회참여를 남성 위주의 사회가 필요로 했던 시기와 맞물린 것이고, 그런 기회를 제공한 것은 세계 대전이었다. 그리고 새천년을 전후하여 주기적으로 발생한 온갖 금융위기는 전통적 가정의 가부장인 남성의 외벌이만으로는 핵가족을 경영할 수 없는 새로운 가정환경을 낳았고, 그 결과 여성의 사회참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됨에 따라 여성인권 주장이 낯부끄러운 주제가 아닌 사회 이슈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금융위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우리도 알게 모르게 금융위기로 인한 사회 전반의 변화를 알고 있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건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정부의 산아제한정책 구호가 잘 먹혀들어서가 아니지 않은가? 비정규직의 탄생은 IMF가 명령한 혹독한 구조조정의 결과물 아니었나? 온갖 펀드가 난립하고 저축은 이제 더 이상 재형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수능 1등이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가는 것이 아니라 왜 경희대학교 한의예과를 가더니... 가만, 이제는 한의예과는 수능 상위권 목록에서 보이지도 않는 것인가? 뭔가 점진적인 것들 때문에 일어난 사회변화 같아 보이지만, 곱씹어 생각해 보면 이러한 추세가 새로운 표준 ㅡ 시쳇말로 뉴노멀(new normal) ㅡ 으로 자리잡게 된 계기는 지역, 혹은 전세계를 뒤흔든 거대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19는 전세계를 뒤흔드는 거대한 사건 축에 속한다. 솔직히 SARS와 MERS보다도 더 심각한 질병임에 틀림이 없다. 이 시간 기준으로 전세계 감염자는 40만명을 돌파했는데, 이것도 꽤 많은 숫자지만 확진자의 지리적 분포를 전지구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것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세상 사람이 동아시아와 서유럽, 그리고 북미에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운 나쁘게도 그나마 의료시설과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나라들만 지금 골라서 유행하고 있다. 사람들이 감염자 수 표의 윗부분만 보면서 '이탈리아가 이렇게나 많이 감염되었어?'만 쓱 보고 지나가지만 지금 아래쪽에서는 파키스탄을 비롯한 남아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에콰도르와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에서 바로 몇 주 전의 서유럽과 같은 상태로 지금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 동네들의 기온은 이곳보다 몇십도는 더 높고 습하기까지 한데 말이다! 그렇게 되면 4월 첫주에 전세계 확진자는 100만명을 넘어서게 될 것이고, 전례없는 조치 없이는 5월이 되기 전에 확진자가 500만명은 아주 우스운 숫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치명률이 3%라고 해도 몇 십만명이 죽는 것는 것인데, 2017년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사망자 중 62만여명이 말라리아로 죽었고, 40만명 정도가 타인에 의한 살해로 죽었다고 한다. 어느날 급작스럽게 발생한 바이러스로 인해 이만큼의 사람이 전세계에서 죽어나간다면 실로 치명적인 것 아닌가? 게다가 어떤 이유로든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남미의 사망률이 지금 코로나19가 창궐한 동네보다 늘 높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런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더 효과적으로 번성할 수 있는 동네로 내려가서 창궐하게 된다면 지금 사망자수는 폭증할 것이 자명하다. 이런데도 날씨가 따뜻해지고 습해지면 코로나바이러스가 멎겠지...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그런데다가 몇 차례의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사실상 쓸 수 있는 금융 및 통화 정책을 다 쓴 뒤, 이제는 무제한 돈찍기나 다름없는 수준의 정책을 천명한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발표를 들여다보면 이것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경제 위기라는 것이 입증되고도 남는다. FED는 국채, 회사채, 개인 채권까지 돈을 쏟아부어 다 사버리겠다고 한다. 이런 비스무레한 정책을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시행할 것 같은데, 도대체 이 정책들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이며 그 이후의 세계 경제 질서는 지금과는 또 어떻게 바뀐다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은 주변국을 거지로 만드는 근린궁핍화(beggar-thy-neighbours) 정책이라서 일본의 아베 신조가 두 번째로 내각총리대신직을 거머쥔 채 경기 부양을 마구 시작할 때 한국에서는 볼멘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기축통화를 쥔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금융의 명줄을 쥐고 있는 거대한 경제 대국들이 이런 식으로 너도나도 나서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된단 말인가?


경제정책에서도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압도적이겠지만, 그에 실리는 기본권 제한의 권한도 막대해질 것이다. 지금 서유럽과 미국은 한국과 싱가포르의 전염병 대책이 탁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행할 의지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서구권의 '브랜드'와도 같은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주 네이처(Nature)에서 제작한 팟캐스트 방송에 따르면 '사생활(privacy)'문제로 인해 도입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런데 말이 그렇지, 사실 서구권에서는 기한을 딱히 두지 않은 봉쇄 혹은 자가 격리 정책 자체가 이들의 가치에 이미 흠집을 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 중국의 대응이 매력적으로 보일수록,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사회문화는 요동을 치게 될 것이다. 결국 각국 사회는 '특수한 상황에 한하여' 중앙정부에 인간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 것인데 문제는 이 특수한 상황이 점차 일반적인 상황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장 우리나라도 흉악범에 대한 신상 공개가 점점 허용되는 쪽으로  사회분위기가 바뀌고 있는데, 10년전만 해도 굉장한 논란이 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ㅡ 신상공개를 허하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은 2010년에 개정되었다. ㅡ 이것 역시 국민의 알권리와 사회 안정이 흉악범의 '신상이 알려지지 않을 권리'에 우선한다는 보편적인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코로나19 위기를 겪은 나라들이 여전히 사생활을 운운하며 격리와 동선 파악, 그리고 정보 공개를 못한다고 버틸 수 있을까? 당장 서유럽과 미국 수준으로 개인의 자유에 대해 숭배하지 않는 나라들이라면 그 어떤 조치라도 달갑게 받아들이며 법을 개정하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나라에 전체주의적인 성향이 일거에 상승하는 것이 된다.


전체주의적인 국가는 대체로 이기적이다. 물적, 인적 자원은 자국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므로 결국 자유로운 세계화를 기반으로한 무역과 인적 교류는 저해될 것이다. 유럽 연합에 속한 국가들끼리는 국경이 사실상 무의미했지만, 지금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국경은 봉쇄되고 국가간 이동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는 이 국가간 자유로운 이동을 담보한 '솅겐 협정(Schengen agreement)'이 휴지조각이 되어 있을 것인데,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끝났다고 해서 예전처럼 국가간 이동이 자유로워질까? 서로 서먹해진 상태에서 과연 전지구적인 문제 ㅡ 예를 들면 기후 변화라든지 아동 인권이라든지 ㅡ 를 주요한 의제로 다루며 국제 공조를 희망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나라가 먹고 살기에 바쁜데 이산화탄소 감축량을 제정해서 들이민다면 과연 아픈 지구를 살려야한다며 조약에 서명하는 것이 그럴듯한가, 아니면 쿨하게 무시하며 공장 가동률을 최대한 높이며 굴뚝에서 연기를 무지막지하게 뿜어내는 것이 더 솔깃한가. 아니, 20세기 말의 세계는 적어도 이런 식으로 막장은 아니지 않았는가?


즉, 이것은 항상성(homeostasis)과 관련된 문제가 된다. 우리 인체는 체온이 떨어지면 몸을 움직여 열을 생산하고, 체온이 높아지면 땀을 내어 열을 체외로 발산하는데, 이것은 모두 체온을 36.5도로 유지하려는 항상성에서 비롯된 자연적인 행동이다. 사회도, 경제도, 외교도 이와 같아서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는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물론 세상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가끔 구멍이 생기는 경우가 있지만 인류 집단 사회는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메워 아까 전의 균형을 다시 맞추거나 혹은 조금 수정된 균형을 확립하려는노력을 기울인다. 문제는 이 구멍이 수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막대하게 커졌을 때의 이야기이다. 비가역적인 어떤 동인에 의해 변화가 되돌려지지 않을 수준으로 진행되었을 때에는 '이전 상태'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은 일찌감치 버리고 붕괴를 예측하는 편이 속편하다. 단시간 내의 균형 성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가 인류 사회의 항상성을 무너뜨렸는지 아닌지를 판단해 줄 정확한 수치 척도는 없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와 대응책을 보면 이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인류 사회가 겪은 가장 큰 파탄임에, 그래서 우리 사회의 항상성을 깨뜨릴 위협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첫 문단으로 돌아가서 다시 말하자면, 나 역시 지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19의 위세가 언젠가는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 질서가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울한 이야기 하나를 하고 마쳐야겠다. 바이러스로 인한 그 일련의 사태 중 하나로서 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오늘 근대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하계 올림픽 경기가 연기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씁쓸한 마음에 2020년 도쿄 올림픽 관련 사이트를 잠시 둘러보았는데 그 중 한 사이트에서 소개하길, 올림픽 정신은 '스포츠를 통해서 심신을 향상시키고 문화와 국적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며 우정, 연대감,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지고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했다.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 문구를 보며 생각한 것은, 지금 어느 것 하나 저대로 전세계에서 지켜지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ㅡ 스포츠를 통한 심신의 향상도, 다양한 차이의 극복도, 우정도, 연대감도, 페어플레이 정신도,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 실현도.


그야말로 암울한 2020년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