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금 1박2일의 일정으로 협력을 진행하고 있는 핀란드 에스포(Espoo)의 알토 대학(Aalto Yliopisto)에 다녀왔다. 베를린 공항에서 떠나는 아침 비행기였는데, 아침일찍부터 비행기를 타는 게 영 찝찝해서 전날 브란덴부르크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핀란드 방문 이후에도 계속 마인츠 근처에 머물며 총 5박을 해야 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독일 올 때 가져왔던 큰 캐리어와 정장용 부직포 케이스도 같이 챙겨야했는데 생각보다 무겁고 귀찮아서 좀 고생을 했다.


라이프치히를 포함한 독일 동부 지방에는 지난 주 초중반부터 비가 내리면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는데, 이 때문인지 핀란드 헬싱키(Helsinki) 기온이 오히려 라이프치히 기온보다 높았다. 용케도 작년에 설치해두었던 헬싱키 대중교통 앱을 지우지 않았던 것을 확인했고, 앱으로 대중교토 이용권을 산 뒤 알토 대학으로 향했다. 2시경에 대학 근처에 있는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연구 그룹이 있는 건물로 향하니, KIST 전북에서 1달 정도 방문 연구를 했던 Lukas Fliri가 건물 밖에서 나를 맞아주었다. 세미나실에 들어가니 Michael Hummel 교수와 조미정 박사님이 계셨고, 우리는 약간의 근황 토크를 한 뒤 바로 연구 관련 협의 및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야기는 대략 3시간 정도 이어졌는데, 사실 끝낼 때쯤 '아, 지금 4시네요?' 했다가 '아니오, 5시입니다.'라고 하길래 깜짝 놀랐다. 노트북에 떠 있던 독일 시간과 실제 핀란드 시간 사이의 차이(=1시간)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말이 많은 내가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아무튼 리그노셀룰로스와 탄소 관련 이야기를 다 끝낸 우리는 헬싱키 시내로 향했다. 지난번 4월에 Hummel 교수가 방한(訪韓)했을 때, 익산과 전주를 오가며 대접했는데 그게 퍽 인상에 남았던 모양인지, 그는 이번에 내가 핀란드에 오거든 최대한 핀란드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던 터였다. 우리는 먼저 헬싱키 시 중심에 있는 Allas라고 하는 대중사우나 및 야외 수영장에 가서 1시간 반 정도 사우나와 수영을 즐겼다. 핀란드가 사우나로 유명하다는 말은 늘 들어왔지만, 차마 들어가 볼 기회는 없었는데, 이렇게 기회를 제공해주어 무척 감사했다. 덕분에 한국의 연구원 동료들과도 한번도 옷 벗고 ㅡ 물론 여기는 혼성 사우나라서 수영복과 같은 가릴 옷을 반드시 입어야 했다. ㅡ 사우나를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외국 협력 연구원들과 스타트(?)를 먼저 끊었다. 사실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건/습식 사우나와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느나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야외 풍경을 바라보며 실내 사우나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몸을 데운 뒤 야외 풀장에 나와 몸을 담그면 기분이 또 좋아지는데, 사우나와 냉탕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 꼭 어렸을 때 목욕탕에 간 느낌이었다. 물론 핀란드 사람들은 집집마다, 아주 개인적인 사우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대중적인 ㅡ 게다가 시내 중심부에 있는 ㅡ 사우나에는 핀란드 사람들보다는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더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핀란드에 사우나가 여기만 있는 것은 아닌만큼, 다음에 (좀 더 추운 계절에) 핀란드를 방문하면 좀 다양한 형태의 사우나를 즐겨보는 탐험(?)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잠시 바에 들렀는데, 거기서 살미아키(salmiakki)가 들어간 보드카 샷을 접해볼 수 있었다. 아마 일반적인 방문객이라면 절대 안 샀을 것 같은데, 내가 워낙 살미아키를 친근하게 여기다보니 이런 귀한(!) 경험도 시켜 주는 것 같았다. (사실 헬싱키 반타(Vantaa) 공항에 내리자마자 한 일이 바로 구내 편의점에서 Fazer 사의 살미아키 캔디를 사는 것이었다.) 핀란드에서 일하는 오스트리아 사람인 Hummel 교수는 '이런 걸 왜 마셔?'라는 표정으로 한껏 얼굴을 찌푸린 채 살미아키 보드카를 들이켰지만, 나는 아주 귀하게 홀짝홀짝 감사하게 마셨다. 그리고 요즘 독일어를 열심히 자습하고 있어서, 미팅과 식사 중간중간 독일어 몇 마디를 좀 읊조렸더니 Hummel 교수도 무척 신기해했다.


11시가 거의 다 되어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때 이런 eine wunderbare nacht (멋진 밤)을 경험하게 해 주어 감사하다고 전했고, 우리는 다음에 또 보기를 기원했다. 웬만하면 핀란드과 협력하는 과제가 하나 추가되어 우리 한국 학생도 알토 대학으로 교환 학생을 보내는 식으로 해서 협력을 지속하면 좋을 듯한데, 2025년에 관련 과제나 프로그램이 있는지 좀 잘 살펴봐야겠다. 


다음날 독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조금 시간이 남아서, 헬싱키에서 가장 유명한 템펠리아우키오 교회(Temppeliaukion Kirkko)를 방문했다. 웬 돌 언덕 아래에 자리잡은 이 교회는 밖에서도 범상치 않은 영험함이 느껴지는 루터교회 건물인데, 안에 들어가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왜 이 교회가 헬싱키에서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지 이해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늘 위로 높이 솟아 하느님 영광의 발끝이라도 닿으려고 하는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이 교회는 땅 아래로 파고 들어 돌 언덕 안에 자리잡은 겸손한 교회이다.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암반과 돌들, 그리고 그 위로 난 창으로 밖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하늘과 땅, 곧 천지(天地)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앉아서 십 수분 앉아 실내를 바라보며 루터교 성가책을 꺼내 들어 이것저것 보노라니 이런 곳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떨까 심히 궁금해졌다. 실내에 사람이 너무 많아져 소란스러워질 때쯤이면 담당하는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나와 실내 정숙을 요구하며 '쉬~' 바람 소리를 내는데, 그때마다 일순간 조용해지는 시간이 무척 황홀했다. 


템펠리아우키오 교회에서 나와 거대한 쇼핑몰이 있는 캄피(Kamppi) 근처에서 조미정 박사님과 식사를 했는데, 마침 비가 오는 날씨와 딱 적절하게 맞는 따끈한 베트남 음식을 먹었다. 조미정 박사님은 이제 여기서 포닥 일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했던 캐나다로 돌아가 연구를 마저 이어가신다고 했는데, 앞으로도 리그닌 관련 연구로 또 인사드릴 기회가 있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근처 기차역에서 인사를 드리고 나는 기차를 타고 헬싱키 반타 공항으로 향했다. 


헬싱키 반타 공항은 그리 큰 공항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럽 각지로 가려는 사람들로 꽤 북적이는 북유럽 중심 공항이기도 하다. 짐을 부치고 보안 검사를 마친 뒤 공항 내 면세점에서 살미아키 제품들과 또 특이한 짜고 매운 맛이 나는 과자(Tyrkisk Paber), 그리고 순록고기 통조림을 샀다. 공항 내에서는 충분한 시간이 있어서 같이 가져온 독일어 교본을 쭉 읽으면서 비행기를 기다렸고, 약간 늦게 출발한 핀에어(Finnair)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돌아왔다. 


두 번의 헬싱키 방문 중에 경험한 것들이 무척 인상적이고 좋아서, 다음에 한 번 더 헬싱키에 와 봐야겠다, 다음에는 헬싱키 교외의 눈덮인 침염수림과 그 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사우나에서 목욕을 즐겨봐야겠다, 그리고 아예 그 참에 북유럽의 도시들과 오로라를 함께 묶어서 보는 투어를 계획해봐야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돈이 많이 깨질 것을 각오하고 열심히 벌어둬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