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위대한 물리학자 6]
Date 2010.04.28
요즘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주제 ㅡ 내가 실험하고 공부하는 것을 내 입으로 '연구'라고 말하자니 조금 머쓱하긴 하지만 ㅡ 에 대한 논문을 살펴보면 언제나 '디락 페르미온(dirac fermion)'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디락이 누군지도 알고 페르미온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으며 이들 단어가 등장하는 '입자 물리학(particle physics)'은 내가 학부 때조차 관심을 가졌던 분야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저런 게 있겠거니, 저런 건 물리학자들이나 알아두면 될 것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논문을읽다 보니 매일같이 등장하는 것이 저런 단어들이었다. 특히 에너지가 웨이브벡터 k 값에 선형 관계를 가질 때 질량이 없는 디락 페르미온처럼 행동한다는 말이 등장할 때면 정말 괜히 서러워지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도대체 내가 모르는 말들만 '간단하게' 던져놓고 지나가느냔 말이다. 그래서 큰맘먹고 중앙도서관에 가서 입자 물리학과 관련된 책을 몇 권 빌렸다. 태호가 여러 책을 추천했지만, 그 책들을 펴보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서 태호가 추천했던 책들 중에서 정성적인 설명이 가득한 책 하나와 '위대한 물리학자'라는 제목을 가진 교양 서적 하나, 그리고 데이비드 그리피스가 쓴 입자물리학 입문교재를 빌렸다.
뭐 깊게 볼 필요는 없었다. 나는 파이온(pion)이나 케이온(kaon)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없고 대칭성이나 양자전기역학 이런 것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단지 내가 원했던 것은 상대성 이론이 가미된 디락 방정식(dirac equation)을 적어도 슈뢰딩거 방정식(schrödinger equation)보다는 약간 못 한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도? 그런데 아뿔싸, 그거 하나를 알기 위해서 거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을 중앙도서관 문을 나선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잠시 교재는 접어 두고 교양 서적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디락과 파인만(Feynman), 그리고 겔만(Gell-Man)의 생애와 연구에 대해 일반인들이 알기 쉽도록 쓰여진 ㅡ 그러나 결코 일반인 대상이 아닌 ㅡ 과학 양서였다. 내용은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내가 정작 원했던 디락에 대해 기술한 분량이 적은 게 최대의 단점이긴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다른 면에서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내가 입자 물리학자, 아니 더 나아가면 이론 물리학자가 아닌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었다고나 할까? 정말 이론물리학은 천재들이 해야 하는 학문인 것 같다. 책 읽는 동안 범접할 수 없는 그 엄밀한 세계에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지고 덤벼들었다가는 그야말로 내동댕이쳐질 것 같은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내가 이론과학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 두 가지가 바로 그 책 안에 기술되어 있었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수학적 엄밀함에 관심이 없다.
아무튼 어느 정도 이해가 쌓이면 빨리 치워야 할 물리학 서적들이다. 오는 길에 고분자화학과 입자 물리학이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보긴 했다. 입자 물리학 연구를 위한 도구로서 고분자 물질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하는 것도 응집 물질 물리학을 위해 고분자화학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런데 폴리스타이렌(polystyrene)과 중성미자(neutrino)의 크기만큼이나 ㅡ 중성미자는 크기가 없는 점입자이다. ㅡ 차이가 극심한 두 분야를 잇는 그런 연구를 하느니 일단 당면한 화학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생산적인 것 같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