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학회의 충격]
Date 2010.10.09


지난 이틀간 대구에서 한국고분자학회 가을 총회 및 연구발표회가 있었다. 고분자학회는 대한민국의 고분자 관련 학계 및 산업계 연구인력들이 모두 모이는 큰 학회로 화학 관련된 학회로는 대한화학회에 버금갈 정도로 매우 큰 학회이다. 이번 학회는 대구 EXCO에서 열렸는데 교통이 썩 좋지 못하다는 단점을 빼면 그런대로 무난했던 그런 학회였다.

그러나 이번 학회를 통해서 받았던 충격은 전혀 무난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큰 위기의식을 가지고 안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난 ACS (미국화학회)만 해도 이런 느낌을 받지 않았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즐겼다는 생각이 그득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 이러다가는 뒤쳐지겠다' 하는 생각이 가슴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와 기어이 온 마음을 까맣게 물들어 놓았다.

가장 큰 원인(?)은 KAIST의 김상욱 교수님의 '분자전자소재' 분과에서의 발표였다. 나는 교수님의 연구가 최근 그래핀 (graphene)을 비롯한 탄소나노소재에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을 이미 몇 편의 논문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이번 발표에서 그 양 (quantity)과 질 (quality)이 보통이 아님을 절감하게 되었다. 우선 탄소나노소재 연구에서 저명한 위치를 확보한 Ruoff 교수진과 연구함으로서 Advanced Materials와 같은 유수한 잡지에 논문을 계속 내고 있었고 내용도 흥미를 끌만한 그런 내용이었다 ㅡ 특히 그래핀의 액정관련된 내용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 연구진이 그래핀에 대한 연구를 최초로 보고한 게 2009년의 일이었는데 1~2년만에 이렇게 많이 진척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학생 포스터 발표도 몇 번 봤는데 정말 빠른 시일 내에 산화 그래핀 분야에 정통한 연구진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단 김상욱 교수님 뿐 아니라 많은 실험실에서 그래핀 관련 연구를 시작해서 그 결과를 속속 보고하고 있었다. 내가 그래핀 관련된 연구를 시작한 게 작년 여름이었는데 그 때만 해도 고분자학회 포스터에 그래핀 관련된 말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번 학회 때에는 그래핀 관련된 포스터가 전체의 5% 정도 차지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급증했다. 나로서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내가 너무 지지부진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하고 좀 걱정스러웠다.

지금 당장 해외의 경쟁자를 논할 때가 아니었다. 정작 우리 나라 안에서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2010년 노벨물리학상이 그래핀을 발견한 노보셀로프, 가임에게 돌아간 것을 보니 한국 과학 연구계의 '쏠림 현상'을 생각해 볼 때 추후 5년간 그래핀 관련된 연구가 봇물 터지도록 쏟아져 주류를 이룰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 과학자들의 연구 수준이 결코 해외 어디보다 뒤떨어지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앞으로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걱정이 한 가득 들었다. 내가 실험실에서 그래핀 얘기를 했을 때만 해도 실험실에서 이 물질을 아는 사람도 없었을 뿐더러 교수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계셨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제 경쟁적으로 그래핀을 연구할 사람들이 눈에 선하다. 작년만 해도 블루 오션이었던 이 분야가 하루 아침에 레드 오션이 될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참 착잡하다.

이미 논문 하나는 써서 교수님께 드린 상태이고, 최종 수정을 본 뒤에 투고 (submit)하는 일만이 남았다. 아무래도 박차를 가해서 뭔가 더 많은 것들을 얻어내야 할 것 같다. 다음주부터 산화 그래핀을 직접 합성하려고 하는데, 진작에 할 걸 하는 생각이 들면서 좀 후회스러웠다. 과학 연구 세계가 치열한 경쟁의 장이라는 사실을 이렇게나마 일찍 깨달은 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이겠지? 그렇게 자위하면서 좌절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

단언컨대, 지금같이 해서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 같으니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정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