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쇼팽의 곡을 한 번도 쳐 본 적이 없다. 왜냐고? 소곡집에 들어가 있는 '강아지 왈츠'의 빠르기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3배 빠른 빠르기였다는 것을 음악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경험한 뒤로 쇼팽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내가 피아노를 조금 더 인내심 가지고 배웠더라면 쇼팽의 에튀드까지 진도가 나갔을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때쯤 되면 음대 지망을 고려했을는지도ㅡ. 피아노 학원을 적당한 시기에 끊고 혼자 열심히 연습하게 한 것도 오묘하신 하나님의 섭리이리라ㅡ.

아무튼 지난 4월이었나 5월이었나, 안양 교보문고에 갔다가 충동적으로 책을 질렀는데 Spencer Johnson의 'The Present'와 'Who moved my cheese?', 그리고 Beetoven sonata와 Chopin Ballad&Impromptu 악보집을 샀다. 왜? 그냥ㅡ. 쳐 보고 싶었다.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는 건 꽤나 유익한 일 아닌가?
'Pathetique'만으로는 레퍼토리가 부족해!
그 지독한 쇼팽이잖아! 막 이러면서.

오늘 똑같은 부분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메트로놈으로 84부터 시작해서 기어이 120 부근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 부분만) 신기했다. 철옹성같이 여겨지는 것도 열번은 반복하니까 음표들이 이어지는 것이ㅡ. 이건 공부와 똑같다. 교과서와 문제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면 어느새 논리의 고리가 이어지더니 개념이 이해가 가는 것 처럼...

두뇌 회전 속력이 메트로놈이 딱딱거리는 것마냥 빨라지기 시작한다ㅡ. Moderato, Allegro, Presto...

내 생각에는 클래식 곡을 혼자서 연습하여 익히는 건 내 생애 마지막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이게 한계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몰라, 정작 거기에 다다르면 더 먼 곳에 한계점이 보일 지도..!

아무튼 이 여름도 피아노를 치느라, 클라리넷을 부느라 땀에 젖기에 샤워기와 친해져야 하는 계절인 듯 싶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