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혼란스러워]
Date 2010.03.28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요즘 나를 곰곰히 생각하게끔 하다가 이내 지쳐버리게 만드는 질문이다.
나는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아낀다. 그 말은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아끼지도 않는다는 뜻인 것 같다. 결국 그 사랑의 대상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어떤 사람이든 사랑하는 사람 인생에 주연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내 인생의 드라마에는 '나'라는 주연 하나 외에는 다른 주연을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정말 귀중하고 내겐 너무 좋은 배우들인데, 다들 조연들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나는 100% 순도의 이성애자는 아닌 것 같다. 여자든 남자든 특별한 가중치를 전혀 두지 않는 나의 사고 방식과 행동으로 짐작해 보면. 다들 내 삶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들인데, '너는 여자니까' 혹은 '너는 남자라서'라는 전제를 두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건 어쩌면 내재한 중성성(中性性) 혹은 양성성(兩性性)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결국 두 가지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흔히 커플더러 잊었던 반쪽이라고 그러는데, 나는 ㅡ 다른 누군가의 언어를 빌리자면 ㅡ 나 자신만으로도 충만한 한쪽인 셈이다. 게다가 애끓는 정열과 타는 목마름으로 이성을 구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나는 어떤 존재인 걸까? 왜 보통의 남자들처럼 사고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것인지, 또 왜 그 본능이 결여된 것처럼 느껴지는 건지. 사람은 항상 특정한 누군가에게 사랑을 쏟아붓고 살고 싶어한다는데, 그래야 연인으로 또 가정으로 이어지는 거라고들했는데, 난 이러다가 만인과 결혼해야 하나? 생각이 꼬리를 잇다보면 또 이런 문제가 불쑥 나타난다: 결국 모두에게는 내가 괜찮은 어떤 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는 있지만 나 또한 그들의 인생에서 주연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 나 자신은 내 안에 남을 들여놓지 않으면서 나는 남의 안에 들어가길 원하는 이 황당한 이기주의는 참으로 경멸스러운 것이지만 이미 석화된 내 어두운 자아이다.
요즘엔 '너는 정말 자기관리가 철저한 성실한 애야' 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 한 구석이 아프다. 나를 관리하는 것만큼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
요즘엔 '애인 있어? 연애도 해야지 뭐하고 있니?' 라는 말을 들으면 괜스레 침울해진다. 내 마음에서 연애가 1순위가 아닌 것 같아서 미안.
요즘엔 '너는 연락도 잘 안하고, 정말 바쁜가 보네' 라는 말을 들으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능동적으로 관계를 이끌어가지 못해서 미안.
요즘엔 '넌 좀 남자같지 않아' 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나도 잘 모르겠어서 미안.
다 옳은 말이고 이미 수 년 전부터, 혹은 십수년 전부터 들어왔던 말이다. 지금 너무나도 가슴 아픈 건, 예전에는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던 이런 말들이 지금은 왜 이렇게 힘든 건지... 지금 나의 모습 이대로를 유지한 채 이전까지 그러했던 식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난 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걸어 왔다. 나 자신을 신뢰하고 아끼고, 그런대로 세상적으로는 모범적으로 스스로를 발전시켜왔으니까. 그런데 앞으로의 인생의 험로는 타인에 대한, 그리고 타인으로부터의 사랑으로 헤쳐나가는 것 아니던가? 이렇게 무언가가 심각하게 결여된 상태로 잘 살아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자신감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부쩍 눈물이 왈칵 나오는 때가 많다.
도대체 나는 다른 친구들과는 왜이리도 다른 걸까? 남들의 고민은 내 고민거리가 아니고, 내 고민거리는 남들의 고민거리가 아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나는 이미 그들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가진 채 자라왔고, 반대로 그들은 나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전혀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자라왔다.
내가 이런 날것의 추한 내면을 공개된 공간에 적는 것도 결국 황당한 이기주의의 발로인 것 같다. 어딘가 남들이 열어볼 수 없는 공책에 적어놓는다 해도 갑갑한 게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솔직히 민망하기도 하다.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날 처음 본 사람이 아닐바에야 내가 지금 끄적이고 있는 이 활자들이 헛것은 아니라고들 생각할 것 같다. 항상 no problem이라고 해 왔는데, 지금은 나를 전혀 모르는 카운셀러에게 SOS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나답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은 환상 혹은 거짓이다. 결국 내가 나를 그 표준, 그 규격에 구겨 넣어야 하는데, 모양새가 전혀 맞지 않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다.
횡설수설이다. 말 그대로 혼란스러울 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