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말할까 고민하다가 여자이니까 그런 말 못한다고 읊조린 '여자이니까'의 여성 화자가 당돌하게 클럽에서 만난 남자에게 이름과 전화번호를 묻는 '이름이 뭐예요?'의 화자로 전이하기까지는 약 30년이 걸렸다. 대중가요의 가사만큼이나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를 이처럼 뚜렷하게 나타내는 표지도 없을 것이다. 젠더 이슈 뿐이랴? 기실 온갖 사회의 흐름은 여느 가사 곳곳에 은밀히 들어차 있어 이것만 분석해도 흥미로운 발견이 참 많다.


최근에 AKMU의 '후라이의 꿈'이라는 노래를 라디오에서 듣고 노래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워낙 여성 보컬의 실력이 출중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가사 전달력이 너무 떨어지는 건지 노래만 들어서는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어제 가사를 검색해서 읽었는데, 무척이나 (부정적으로) 흥미로웠다. 다음은 1절 및 후렴구의 가사이다: 


저 거위도 벽을 넘어 하늘을 날을 거라고 

달팽이도 넓고 거친 바다 끝에 꿈을 둔다고 

나도 꾸물꾸물 말고 꿈을 찾으래 

어서 남의 꿈을 빌려 꾸기라도 해 

내게 강요하지 말아요, 이건 내 길이 아닌걸 

내밀지 말아요, 너의 구겨진 꿈을 

난 차라리 흘러갈래 

모두 높은 곳을 우러러볼 때 

난 내 물결을 따라 (hey) 

Flow, flow along, flow along my way (way, way)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계란 fry, fry 같이 (fry, fry 같이) 


내가 이 노래를 듣고 연상한 또다른 노래는 제목은 비슷한 '거위의 꿈'이었다. 27년전에 발표된 이 노래의 후렴구 가사는 이와 같다: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굳이 여러 분석적인 글을 동원해가며 30여년의 세월이 청년의 꿈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비교해 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벽을 넘어 하늘 높이 날 수 있을 거라던 거위를 보던 계란은 그냥 밥 위에 나른하게 퍼져 누워 자기를 꿈꾸는데, 중국에서 유행한 탕핑(躺平)의 테마곡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흥미롭게도 '후라이의 꿈'은 꿈을 상실한 대신 경쾌하고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를 선사하는 데 반해, '거위의 꿈'은 곡에서도 일종의 비장미가 느껴질 정도로 격하게 부른다. 인순이가 '거위의 꿈'을 리메이크해서 부른 것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다만 '후라이의 꿈' 관련 영상에 달린 한 가지 재미있는 댓글이 하나 있어서 공유한다: 그럼 네가 누워 잘 따뜻한 밥은 누가 만들지?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