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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2024 2023 2022 2021 2020 2019 2018 2017 2016 2015 2014 2013 2012 2011 2010 2009 2008 2007 2006 2005 2004오늘은 내 짧은 화학 연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하루였다. 바로 첫 합성 스텝을 보낸 뒤 이를 핵자기공명분광(Nuclear Magnetic Resonance Spectroscopy, 이하 NMR) 스펙트럼을 얻는 분석을 행한 것이다. 지금까지 박사과정동안 나는 이미 합성되어 판매 및 유통되는 고분자 및 단분자를 이용하여 실험을 해왔다. 그래서 굳이 내가 사용하고 있는 물질들의 화학적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분석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판매되지 않는 물질을 새로 합성해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합성 중간중간에 내가 제대로 물질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유기화합물의 구조 분석을 위해서는 NMR 혹은 적외선분광(Infrared Spectroscopy) 스펙트럼을 분석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며 지난 주에 화학과 건물에 있는 NMR lab 에서 교육을 마쳤기 때문에 분석 자격이 있었던 나는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샘플을 준비하여 NMR lab에 갔다.
왜냐? 사실 내가 나 스스로 NMR을 찍으러 분석실에 간 적은 대학원 NMR 수업 때를 빼고는 전무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상술한 바와 같다. 내가 합성한 물질들이 모두 클로로폼에 녹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중수소 치환된 클로로폼을 조심스럽게 꺼내 0.7 mL 정도의 용액을 만들어 재빨리 NMR 튜브에 담았다. 내가 이 튜브를 잡고 건물을 활보하게 될 줄이야... 만감이 교차하면서 그렇게 화학과 건물로 간 것이다.
이곳에 설치되어 있는 Bruker 사의 400 MHz NMR은 자동샘플장치(autosampler)가 있어서 분석하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권한을 받은 연구원들은 원격으로 NMR lab 사이트에 접속해서 기기가 알아서 분석한 결과 내용을 쉽게 전송받을 수 있다. 특이하게도 여기 미네소타 대학 화공재료학과서는 NMR 튜브를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세척하여 재사용하는 것을 선호하기에 ㅡ 솔직히 놀랐다. 서울대에서는 다들 쓰고 버렸는데 돈도 많은 사람들이 왜?? ㅡ 어차피 NMR lab에 재방문하긴 해야 하지만 아무튼 매우 간단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결과는 예상대로 그리 양호하지 않았다. 첫 합성 실험이다보니 원료 물질로 활용한 시약들이 여전히 결과물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시스테인(cysteine)의 경우 반응 이후 아주 점성이 높은 물질이 되어버린바 뭔가 원하지 않은 반응이 플라스크 안에서 진행된 것 같았고, 이는 NMR 스펙트럼을 통해서도 유추 가능했다. 카복실산기가 대체 어디로 간거야!!!
그래서 일단 앞으로의 실험을 두 방향으로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첫번째는 재실험 및 정제, 두번째는 일단 그대로 고고하는 것이다. 후진도 하고 전진도 하는셈. 내가 생전 안 하던 유기합성 실험을 하다보면서 느낀 건데, 유기화학실험은 유기화학 지식을 많이 아는 사람이 잘하는 것이 결코 아닌 것 같다. 이것은 뭐랄까, 성실하고 철두철미하게 실험을 해내는 기술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요리와 상당히 닮았다. 영양 지식과 조리법에 대해 머리로 알고 있다고 요리를 잘 하는 게 아니다. 칼질과 물 온도 조절, 그리고 양념 배합이 적절한지 간을 잘 보는 게, 즉 실질적인 행동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실 아직 광이고 아직 멀었다. 솔직히 처음 NMR 스펙트럼을 눈앞에서 봤을 때 '뭐 이렇게 첩첩산중, 다다익선 스펙트럼이야?' 하는 실망이 10 %는 들었지만 ㅡ 그놈의 벤즈알데하이드(benzaldehyde)가 문제였어! ㅡ 어차피 이것은 처음이 아닌가? 박사과정 때 블록공중합체, 그래핀 등등 처음 접하는 그 모든 것들을 갓 시도했을 때에는 엉망진창이었다. 좀 더 열심히 심혈을 기울인다면 그때보다는 더 빠른 속도로 개선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90 % 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새로운 시도, 새로운 경험, 새로운 도전을 해오지 않았는가. 박막 블록공중합체와 마이셀을 다뤘던 내가 고분자 단량체를 합성하는 것이 결국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도인 것이다. 그러니 그 어느때보다도 화학의 코어(core)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지금 이 때에 늘 그래왔듯이 즐겁게, 그리고 성실히 실험에 임한다면 결과가 어찌되든간에 최소한 나는 한층 크게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위와 같은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나이와 학위를 허투루 얻은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