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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어 나는 어제 로스앤젤레스에 왔고, 거기서 오랫동안 안 사이인 독일 친구 Bernd를 만났다. BASF에 취직하기로 결정한 그는 내년 3월에는 독일로 돌아가게 될 예정이라고 했으니 이때가 아니면 미국에서 Bernd를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예와 다름없는 모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Bernd도 참 안 늙는다. 우리는 주린 배를 간단히 채운 뒤 해변으로 건너가 자리를 깔고 앉아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고맙게도 그의 여자 친구 Joceline의 가족이 추수감사절 저녁에 나를 초대해주었다. 처음에는 가족 모임에 불쑥 참석하는 것이 결례가 아닐까 싶어서 매우 조심스러웠는데 알고보니 여자친구도 남자사람친구를 한명 초대했던 것이다. 가족 저녁 식사에 손님이 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Joceline 가정은 엘살바도르(El Salvador) 출신의 히스패닉 가정이었는데 LA 근처의 밴너이스(Van Nuys) 지역에 살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스페인어로 간단히 인사를 했고, 내 숙부 가족이 엘살바도르 옆의 과테말라(Guatemala)에서 산다고 말했다. Bernd 여자 친구의 어머니는 굉장히 적극적인 분이셨는데, 그는 과테말라가 무척 아름답다며 꼭 여기 있는 동안 방문해보라고 거듭 말씀해주셨다.
이윽고 오븐에서 맛나게 구워진 거대한 칠면조가 등장했고, 나는 식탁에 둘러 앉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배가 터지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식탁 위에 와인이 엄청나게 올라왔는데, 미국에 도착한 뒤 석 달가량 마신 것보다 이곳에서 술을 훨씬 더 많이 마신 것 같다. 거기에 더래 데킬라 두 샷을 넘겼는데, 두 번째 샷을 넘기는 순간 '아, 이대로 계속 마시면 너무 힘들어지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저녁을 얻어먹은 것도 부족해서 잠까지 그곳에서 청하면 너무 실례가 아니겠는가 싶었던 나는 저녁 초대를 받기 전 미리 그 집 근처의 호텔에 방을 하나 예약해두었다. 밤 10시가 가까워지면서 나는 인사를 나누고 호텔로 향했고, Bernd와 Joceline의 남동생이 친히 근처에 있는 호텔까지 바래다 주었다. 이게 어제의 일이었다.
오늘 오전 8시에 일어난 나는 Bernd와 함께 근처 스페인 음식점에서 아침을 아주 거하게 먹었고, Getty 박물관에 가서 LA의 풍경과 함께 멋진 회화 작품들을 감상했다. 그리고나서 고민의 순간이 찾아왔다. 사실 이날은 Joceline의 어머니 생신이었는데, 그녀의 가족과 Bernd는 쇼핑을 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신경쓰는 것일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손님 주제에 계속 얻어먹으면서 같이 다니기엔 너무 민망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또 오늘 묵기로 예정된 호텔에 체크인도 마냥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었는지라 나는 고민 끝에 Joceline의 집으로 돌아가 인사를 나눈 뒤 나는 따로 호텔로 가겠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그녀의 어머니는 흔쾌히 나를 호텔 위치까지 바래다 주셨다. 생신 축하드린다는 인사를 스페인어로 하고 모든 가족들과 악수를 하며 작별을 하였다. 그리고 친구 Benrd와는 언젠가 꼭 다시 보기를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호텔에 체크인한 나는 잠깐 고민했다가 바로 근처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Universal Studio)로 향했다. 작년에 오사카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간 적이 있었는데, 올해는 어쩌다가 할리우드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까지 오게 되었다. 오사카에는 없는, 이곳에만 있는 스튜디오 투어(Studio Tour)는 굉장히 인상깊었는데 3D 기술이 참 날로 발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 다음날 금요일 연휴였던지라 밤 10시까지 운영을 했고, 나는 밤 9시까지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활보하면서 세 개의 어트랙션을 즐기고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사진 좀 찍다가 고등학교 동창인 경복이를 만나서 점심을 먹고 미니애폴리스로 돌아갈 예정이다. 오후에 비가 좀 올 것 같은데 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기를!
(즉흥적으로 진행된 LA 여행이었는데 굉장히 성공적인 것 같다. 특히 Bernd를 만남으로써 지난 6~7년간 서울대 손병혁 교수님 연구실에서 만났던 모든 DAAD 및 IRTG 교환학생들을 올해 모두 만나볼 수 있었다. 오늘 Bernd와 헤어질 때 내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해 준 그 모든 독일 친구들을 아마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