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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변학적 특성 측정을 시도하면서 내가 얼마나 화학적인 것 외에는 무지한가를 깨달으면서 동시에 여전히 나는 박사학위를 마친 뒤에도 지금까지 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또 시도하고 있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물론 유변학적 특성이란 것이 물리학적인 고찰을 요하는 것이기에 접근이 망설여지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문제는 내가 학부 때 물리학 전공 유체역학 수업을 안 들었다 ― 정말 멍청이같이! 괴상망측한 복소변수함수론 이런 거 들을 바에야 유체역학같은 소중한 수업을 들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신 손병혁 교수님께서 늘 말씀하시길, 고분자화학의 재미는 바로 분자의 물성을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관찰 및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유기 화학에서 다루는 유기 화합물의 친핵도(nucleophilicity)라든지 키랄성(chirality)은 화학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성질이자 근본적인 특성이지만 전자의 경우 '계열(series)'로서 표현은 되나 그 대소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없다는 점에서, 후자의 경우 인간의 감각이 구별 가능할 때도 있으나 대부분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자연과학적이자 동시에 때로는 상상속의 성질이다. 물리 화학에서 다루는 오비탈이나 진동 에너지 레벨 등은 이미 인간의 직관과 오감을 초월한 개념들로서 우리가 분자를 눈앞에 두고도 상상 속으로만 떠올릴 수밖에 없는 개념들일 뿐이다. 이런 개념들은 비커나 시험관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의 변화와 추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해하거나 혹은 굉장히 논리적으로 정리된 교과서를 통해 머리로 습득이 가능한 것들이다. 다시말해 우리의 오감이 직접 이러한 성질들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그에 반해 고분자의 경우 우리가 직접 늘여보거나 만저보거나 혹은 성형(?)해 보면서 분자의 변화에 따른 특성들을 실제로 체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분자량의 크고 작음에 따른 고분자의 상변화라든지, 분자 구조의 변화에 따른 경도의 급격한 차이 등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학부 고분자화학 수업 때 손 교수님은 늘 항상 학생들에게 문방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무밴드를 하나씩 나눠주시며 힘껏 늘여본 뒤 입술 아래에 갖다대어 보라고 하곤 하셨다. 즉, 엔트로피 탄성체인 고무에 가해진 변형에 의해 엔트로피가 낮아짐에 따라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직접 피부로 체험해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온도계나 굉장한 정밀도의 변형-응력 측정 장치가 전혀 필요 없다. 단지 우리의 손과 입술이면 충분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유변학적 특성 측정은 손병혁 교수님이 꽤나 좋아하실 만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화학적으로 합성한 물질들을 지금까지는 NMR이나 IR로만 분석했는데, 유변학적 특성을 측정하면 이 물질의 기계적인 특성, 즉 강도나 점탄성을 보다 면밀하게 수치화하여 나타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 물질이 어떤 응용에 유리할 수 있는지, 혹은 기존의 물질을 대체하기에 적절한 것인지 바로 실험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유변학적 특성 측정 기계실 총괄 담당자인 David Giles로부터 오늘 장장 4시간 반에 걸쳐 기계 사용법을 익혔다. 다음주중에는 내가 만든 샘플 세 개를 바로 측정해 볼 예정인데, 일단 오늘 예비 실험 결과는 꽤나 긍정적인 편이다. 몇 개의 변수들을 적절하게 입력해야 하는 난제가 있긴 하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해결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런 측정을 하게 될 날이 오다니, 참 신기하면서도 또 즐겁다. 이번 측정을 마친 뒤 IR과 비교하여 향상된 물성이 직접적으로 측정이 된다면 아마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동안에는 논문을 작성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