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검색을 통해 내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는 방문자들의 검색 키워드를 살펴보면, 압도적인 1위는 소이캔들이다. 그런데 최근 1~2달간 그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높은 유입률을 보이는 검색어가 등장했으니 다름아닌 미국 포닥과 관련된 검색어이다. 특히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 실제로 구글 검색창에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을 치고 검색버튼을 누르면 한국연구재단(NRF)의 공식 사이트 글 세 개 다음으로 바로 내 홈페이지의 일기장 글 (http://fluorf.net/xe/83404)이 뜬다.


그게 벌써 11개월 전의 이야기이다.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 가운데 국외박사후연구원지원사업이 있는데 선발된 사람에 한해서 1년 포닥 월급을 국가연구재단에서 지급해주는 사업이다. 왜 고용주가 아닌 정부가 돈을 지급해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해외 연구소에 금전적 혜택을 안겨주는가에 대해 볼멘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은 반면 자리는 한정되어 있어 포닥을 나오는 게 워낙 쉽지 않고, 미국 교수님들 입장에서도 국내에서 경쟁을 먼저 거친 사람에게 자리를 주는 것이 여러모로 낫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이 사업이 국내외 관계자들의 '필요 아닌 필요'에 따라 지금까지 계속 존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아무튼 11개월 전에 나도 다른 포닥 지망생들과 같이 계획서를 써서 한국연구재단에 제출했었다. 당시 내가 국외연수지로 선택한 곳은 싱가포르 국립대학(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의 Loh Kian Ping 교수 연구실이었는데, 이 교수님은 내 사정을 듣고나서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에 선정되면 포닥을 받아주겠다고 얘기한 바 있었다. 사실 미국의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틈새(?)를 노린 면도 없잖아 있었다. 그래서 그림 27개가 포함된 그래핀과 관련된 20장짜리 계획서를 거의 2주에 걸쳐 작성한 뒤 ― 물론 작성 속도는 제출하기로 결심한 날에 가까워질수록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했다. ― 추천서와 확약서, 그리고 기타 서류들을 모두 준비하여 제출했다.


3달 뒤인 5월 22일경에 NRF 사이트에서 결과가 떴는데 최종 결과는 '비추천'. 그런데 평가자 세 명의 평은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편이었다. 아마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니 아래에다가 그대로 옮기도록 하겠다.


(평가자1)과제 제안자는 제안한 과제 관련 연구 수행 실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비춰보아 제안한 과제를 수행할 적절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됨. 국내외 연구동향 및 선행연구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연구목표와 연구내용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음. 연수기관도 제안한 연구분야에서 비교적 우수한 연구 실적을 보유한 연구실로 판단됨.


(평가자2)연수자가 제안하는 연구주제가 매우 독창적이며 흥미로움. 연수를 수행하고자 제안한 연수기관 역시 본 과제를 수행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로 판단되며 좋은 연구성과를 도출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것으로 판단됨. 그러나, 본 연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구체적인 결과물이 무엇인지 불분명함.


(평가자3)연수자는 박사학위의 전공을 바탕으로 명료한 연수 계획서를 제시하였습니다. 연수 기관은 제안된 연구과제의 수행에 있어 높은 적합성을 보이며 연수자는 구체적인 연구 내용 및 범위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평가 내용을 보신 교수님 曰 "평가는 정말 좋은데 도대체 누가 되는지 궁금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i) 추천이 되려면 평가자 3명이 모두 아주 깔끔한(clear-cut)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것; ii) 신청하는 포닥 지망생들의 경쟁률; iii) 평가자의 성향; iv) 운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이 결과를 받아들었을 때는 미네소타 대학으로부터 포닥 자리를 오퍼 받은 뒤였기 때문에 비추천이라는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아쉬워하는 분들을 참 많이 봤던 기억이 난다. 재수를 준비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더는 안 되리라 생각하신 분들 중에는 취직 자리를 구해서 학교를 나간 분들도 있었다.


사실 포닥이 '마땅히 해야 할 과정'으로 정착된 것은 불과 십수년 사이의 일이다. PhD comics 만 봐도 포닥이라는 존재는 굉장히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데, 아무튼 아카데미아의 룰이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아닌 이상 우리는 이 법칙을 충실히 따르며 도약할 기회를 엿봐야 하는 삶을 살수밖에 없지 않은가. 부디 공정하고 마땅한 결과로 혜택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혜택 받을 수 있기를.


그리고 나도 정말 힘내야겠다. 물론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에까지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보다도 더 열심히 해야할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선망하던 자리에 어쨌든 내가 있는 것이니까.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