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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간여를 푹 자고 일어나니 햇살이 버티컬 사이로 비치는 아침 8시가 되었는데 전날 해 놓았던 반찬들과 국을 데운 뒤 아침을 먹고 나니 그제서야 그 이상 고온에 신음하는(?) 온화한 겨울 날씨가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서 실험을 하긴 해야겠는데 이 좋은 날씨를 그냥 지나치는 것은 애석하다는 생각이 마음을 파랗게 채우고 있을 찰나, 같은 실험실의 다른 포닥 박사님께서 미니애폴리스 시립 미술관(Minneapolis Institute of Art)이 규모가 굉장히 크고 볼거리도 많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계획대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즉흥의 창발(創發)을 항상 장려하는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나서 바로 외출 준비를 하고 집앞 버스 정류장에서 2번 버스를 탔다.
그런데 미술관의 전시 내용보다도 더 내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었던 것은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미술관까지 걸어가는 5분 남짓되는 거리였다. 눈앞에서 쏟아지는 햇빛, 그리고 그 햇빛이 가져다주는 온기, 차갑다는 누명을 비로소 벗어버린 신선한 공기를 맛보며 미술관으로 향하는 그 길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이같은 청량하고 산뜻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오랫동안 생활했던 안양과 서울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으며 거리를 걸어본 적이 드물었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걸었다. 잠시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딘가 향하는 발걸음'이 없이는 이 느낌을 온전하게 느끼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걸었다. 참 감사하게도 미니애폴리스 시립 미술관은 다른 미술관과는 달리 높은 고층 빌딩과 현대적 건물이 가득 들어찬 시내 중심가, 혹은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 지점에 있지 않고 저층의 주택들이 즐비한 곳에서 뜬금없이 홀로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미술관 가는 길이 이토록 고즈넉하기는 또 처음이었는데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그렇게 유유히 걸어갈 수 있었다. 너무나도 좋았다.
학부 때 무기화학 수업을 맡으셨던 교수님은 날씨가 눈부시게 좋았던 어느 봄날 모든 수강생들을 (지금은 새롭게 바뀐) 노천강당으로 불러모으셨다. 그 교수님은 '여러분, 1년 중에 날씨가 이렇게 좋은 날이 며칠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우리 인생을 생각해 봤을 때 말이죠, 이제 여러분이 살면서 이렇게 좋은 날씨를 이렇게 밖에서 자유롭게 누릴 날이 얼마 없다는 뜻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는 말이다.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가장 추울 것으로 생각되었던 2월의 어느 날, 그 얼마 안 되는 '이렇게 좋은 날씨를 이렇게 밖에서 자유롭게 누릴 날'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무척 기뻤다.
슬프게도 미술관 전시 관람을 마친 정오부터는 그야말로 폭풍같이 몰아치는 일정에 황홀경 속에서 가다듬었던 정신을 송두리째 박탈당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라자냐를 해먹어야지 싶었던 계획은 실험 일정이 밤 8시를 초과함에 따라 그냥 라면으로 때우자는 타협으로 변질되었고, 그와 함께 상쾌했던 그 기분은 온데간데 없이 지금 노곤한 육체만이 의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 아침의 기억은 여전히 지친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사실 고백하건대 지금도 그 기억은 적잖은 위로가 된다. 그런 시간을 또 맞이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