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주보편집원의 자격으로 매달 한번씩 열리는 "예배 및 음악 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늘 마지막 순서로 성찬례 중에 새롭게 사용될 기도문을 함께 읽었는데, 다 읽고 난 뒤 Father, Son, and the Holy Spirit(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이란 원래 문구가 수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처음엔 오타가 난 건가 하고 살펴봤지만 그런 건 없었다. 첫 수정안은 Creator, Redeemer, and the Holy Spirit(창조주, 구속자, 그리고 성령)이었는데 최종 수정안은 the Holy Trinity(삼위일체) 였다. 그제서야 무릎을 나도 모르게 탁 친 것이, "중성적(gender-neutral)인 단어를 쓰는구나!"


예전에 보스턴에 있는 회중 교회(Congregational Church)에 갔을 때, 신조에 God the Father-Mother, only begotten offspring, Sovereign 이라는 중성적인 표현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었는데, 그게 이땅 미국에서는 하등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위원회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5~60대. 우리 나라 어르신들로부터는 상상하기 힘든 관점을 이미 획득하신 분들이시다. 성과 수를 구분하는 인도유럽어 계통의 언어 특성상 명사에 문법적 성 이상의 성별 구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성평등과 더불어 전통적인 젠더 개념의 혁파가 일어나는 현 시점에서 그들 언어의 "성 개념"이 개혁 대상이 된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들이 예수가 남자였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며 ㅡ 예수는 태어난지 아흐레만에 유대인들의 예법에 따라 할례를 받았다! ㅡ 단지 예수가 "남자"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신학적으로 무가치한 사실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라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즉, 기성 젠더 개념을 탈피함으로서 기독교의 전인류를 향한 복음의 성격을 더욱 명확히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페미니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양성 평등 등의 가치들이 한데 복잡하게 섞여있기 때문에 신학에서의 중성적 표현을 어느 한 면만 똑 떼어내어 단편적으로 이해하기는 곤란하다. 보수적인 개신교단에서는 성부와 성자의 남성성을 논하는데 아무 거리낌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특히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는 종말이 올때까지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님을 남성성과 긴밀하게 결부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견해는 여성의 교회 내 권리에 대한 의견과 궤를 함께할 것이며 넓은 스펙트럼을 이루는 그 의견들은 다들 내재적으로 논리적, 신학적 일관성을 갖춘 주장일 것이다. 결국 중성적 표현을 쓴다는 것은 성에 대한 다양한 관점 중 하나로서 여성 역시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종이며 교회의 모든 사역에는 남자나 여자나 동등하게 참여하며 타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믿음을 나타내는 지표와도 같은 것이다. 여성 주교까지 인정한 미국 성공회의 고백이 거기에 속하는 것이고.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교계에서 중성적 표현에 대한 논의는 별로 활발하지 못하다. 사실 교계뿐아니라 사회 일반에서 이런 얘기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는 것 같다.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나는 한국어 자체가 성에 대해 굉장히 중립적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국어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그"로 지칭되며 직업에서 "여"를 붙이는 것이 여성혐오라는 말이 나오긴 하지만 아무튼 "여"를 빼버리면 그만인 정도로 굉장히 단순한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어에는 문법적 성과 그에 따른 동사 및 어미 변화 자체가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어는 중성적 표현을 잘 살리면서 새로운 시대의 젠더 개념을 잘 아우를 수 있는 언어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와 관련된 논의가 시작될텐데 과연 한국의 기독교계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Fot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