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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니를 처음 알게 된 건 첫 데뷔곡인 '누난 너무 예뻐(Replay)'를 거리에서 듣게 되었을 때였는데, 멜로디나 목소리가 10대 아이돌 그룹의 것이라고 하기엔 (당시로서는) 굉장히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나다를까 수록곡들 몇몇을 듣고나서 이 그룹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주변에서는 어디 그런 듣도 보도 못한 꼬마 그룹을 운운하냐며 비웃곤 했지만, 나는 언젠가는 얘들이 당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빅뱅보다 더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늘 되받아치곤 했다.
개인적으로 샤이니의 음악 성향은 미니 앨범 'Sherlock'을 기점으로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전환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듯한 사운드의 얼얼함은 그 후에 나온 정규 앨범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고, 뒤이어 발표된 곡 'Everybody'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때는 거의 f(x)와 함께 SM 엔터테인먼트의 실험적이면서도 꽤 대중적인 도전을 일궈내면서 평론가와 팬들의 호평을 두루 받는 그룹으로 이름을 날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이후의 앨범에서는 다소 힘을 빼면서(odd, 1 of 1) 좀 더 트렌디한 음악으로 넘어갔는데 그러면서 멤버들의 개인 활동 영역을 늘려줌으로서 일종의 '출구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온유는 연기 활동을 겸하고, 태민은 좀 더 집중적으로 솔로 보컬로 홀로서기를 하고, 키는 뮤지컬과 다른 가수들과의 협업을 한다든지... 데뷔한 지 9년이 훌쩍 넘은 시점에서 예전과 같은 아이돌로서의 입지를 지키기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이들도 어쨌든 각자도생의 길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 중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것은 역시 리드 보컬인 종현의 노래실력이었다. 아이돌 밴드 첫 앨범에는 알레한드로 산츠(Alejandro Sanz)의 곡인 'Y si fuera ella (만약 내가 그녀였다면)'을 번안한 곡인 '혜야'가 있는데, 알고보니 종현의 솔로였고 멤버 혼자 노래한 것 데뷔 앨범에 실려있는 것을 알고 굉장히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노래 실력이 출중했다는 얘기. 사실 종현의 보컬 실력은 이미 데뷔 때부터 모두들 인정하는 분위기였고, 비록 '불후의 명곡'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소 오명을 뒤집어 쓰긴 했지만, 그와는 상관 없이 종현의 실력 자체에 대해서는 평가절하하기는 힘들었다. 아무튼 그런 특출난 보컬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예상대로 샤이니의 출구 전략 중에는 종현의 솔로 데뷔 역시 포함되어 있었고,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종현은 일찍부터 작사 및 작곡을 하면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홀로 서기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 뛰어난 실력마저도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기엔 부족했던 모양이었나보다. 공개된 유서를 읽어 보면 엄청난 수준의 우울증을 겪어왔던 것이 확인되었고, 여러 정황을 고려해 보면 그 우울증은 결국 자신을 향한 채찍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유의 3집 정규 앨범인 'Modern Times'에는 종현이 작사, 작곡하고 피처링에 참여한 곡 '우울시계'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 가슴 찢어지던 이별도
시간이 흐르면 이불 걷어찰 어린 기억도
잊혀진다 잊혀져 그냥저냥 휙휙 지나 가
잊혀진다 잊혀져 그땐 그게 전분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르면 지금 이리 우울한 것도
시간이 흐르면 힘들다 징징댔던 것도
한때란다 한때야 날카로운 감정의 기억이
무뎌진다 무뎌져 네모가 닳아져 원이 돼
그런데 정작 이 곡을 만든 자신인 이 가사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부디 저 세상에서는 자신의 실력에 대해 넘치는 만족을 누리며 평안한 안식을 누리길 기원한다.
그나저나 사실상 샤이니는 해체 수순을 밟게 될 것 같다. 이미 리더인 온유가 성추행 관련 추문으로 인해 공식 활동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고, 리드 보컬인 종현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래가지고서는 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자 아이돌 그룹 치고는 사회적 물의나 큰 스캔들 없이 거의 8년 이상을 활동해왔던 그룹인데 9년 차에 들어 무슨 액운이 중첩되어 닥쳤는지 급전직하의 느낌을 주면서 활동불능의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 허탈한 느낌마저 준다. 굉장히 응원하던 한 아이돌 그룹의 이야기가 이렇게 매듭지어지다니 나로서도 굉장히 당황스러울 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
팬이 아닌데도 소식 듣고 종일 우울하더라고요. 음악적인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간적으로도 드물게 반듯한 느낌의 연예인이었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가다니... 예전부터 주목하셨다면 제가 느꼈던 것보다도 더 마음 아프셨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