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내셔널 몰에 있는 기념물을 순방하는 오늘, 날씨가 더 추워졌다. 해는 가리워지고 몸을 따뜻하게 데워줄 햇볕이 내리쬐지 않으니 걸으면 걸을수록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결국 순방 중간에 숙소로 돌아와 내복을 한 겹 입고 발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천천히 백악관(White House)으로 내려간 뒤 워싱턴 메모리얼(Washington Memorial)을 지나 2차 세계대전 기념물(World War II Memorial)을 둘러보았다. 애국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미국답게 기념물 주변에는 온갖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들로 가득하였고, 거대한 인공 호수 주변은 50개의 주 이름과 더불어 당시 해외 영토들의 이름이 적힌 비석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미국은 사실상 유일하게 태평양 전선과 대서양 전선에서 전투를 진행하였는데 ㅡ 물론 대영 제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와 호주 역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지만 스케일이 다르다. ㅡ 두 곳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견인하였으니 비록 적잖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가지는 자긍심, 그리고 전쟁에 대한 인식은 각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박물관은 살아있다.'에서 본 링컨 대통령 석상이 있는 링컨 메모리얼(Lincoln Memorial)이 나왔고, 여기서 바라보는 내셔널 몰의 전경은 매우 멋졌다. 조금 더 걸으면 마틴 루터 주니어 메모리얼(Martin Luther Jr. Memorial)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메모리얼(Franklin Roosevelt Memorial), 그리고 토머스 제퍼슨 메모리얼(Thomas Jefferson Memorial)이 등장하고 여기서 바라본 워싱턴의 야경 역시 끝내준다. 하야하고 쫓겨난 대통령, 암살당한 대통령, 내란죄로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언도받은 대통령, 경제위기를 자초한 대통령, 자살한 대통령, 탄핵당한 대통령이 가득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역사를 생각해보면 미국에서는 존경받는 대통령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지만 우리 나라도 100년 뒤에는 그러하리라!!

오늘 점심은 이진규 교수님 방에서 박사학위를 했던 정학성 박사님과 함께 했다. 지금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에서 일하고 계시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분은 내가 학부생일 때, 대학원생일 때, 한국에서 포닥할 때, 그리고 미국에서 포닥할 때를 모두 보신 (현재로서는) 유일하신 분이다. 이런 인연이!! 애넌데일(Annadale)에서 고등어구이를 사주셨는데 어찌나 감동이던지... 거기는 아예 작은 서울이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굉장히 이민 역사가 오래되어 한인 커뮤니티의 규모가 크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NIH도 잠깐 구경하고 메릴랜드의 베데스다(Bethesda)에 잠시 머물면서 커치더 한잔 했다. 헤어질 때 "한국에서 다시 보자"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오늘 하루의 마지막 일정은 조지타운(Georgetown)에 있는 워싱턴의 가장 오래된 재즈클럽인 블루스 앨리(Blues Alley)에서의 재즈 공연이었다. Cyrus Chestnut Trio의 공연이었는데 굉장히 짜릿한 경험이었다. 체스트넛의 연주법은 마치 오스카 피터슨과 맥코이 타이너를 합처놓은 것 같았는데 굉장히 힘있고 현란한 연주였다. 곡의 선택이 매우 다양했는데 바흐의 미누에트와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존 콜트레인의 "Giant Step", 그리고 찬송가인 "죄짐 맡은 우리 구주"도 연주곡 목록에 있었다. 1월에 미니애폴리스에 와서 공연을 하는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너무 추운 날씨에 열심히 돌아다녀서... 내일은 좀 쉬엄쉬엄 다녀야겠다. 박물관만 두 곳 정도 돌아보는 정도로... 아, 뮤지컬도 라나 있구만. 내일도 멋진 하루가 되길 기대하며!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