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4일 수퍼볼 일요일에 다른 교회에서 성찬례를 드린 것을 계기로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느 정도 결론에 이른 나는 신부님께 내 계획을 담은 메일을 보내 일종의 허락을 구했는데, 그 계획인즉 매달 둘째 주 일요일에는 다른 교파의 다른 교회에서 주일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신부님은 내 계획을 잘 이해해주셨고 다른 양식을 통해 드려지는 다른 공동체의 예배를 경험하고 어떻게 하면 더 우리 교회에 발전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고 제안하셨다.


그렇게 해서 어제 처음 간 교회는 미니애폴리스 남쪽에 있는 Hiawatha Baptist Church 였는데 같은 사무실을 쓰는 옆 방 포닥인 Michael Maher가 다니는 침례교 교회였다. 버스를 타면 그리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교회이긴 했는데, 문제는 그 버스가 30분에 한 대씩 다니는지라 한 번 시간을 놓치면 한참을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 그래서 갈 때는 공유택시 서비스인 리프트(Lyft)를 이용했고, 집에 돌아올 때에는 운좋게 버스 시간에 맞추어 7번과 2번 버스를 타고 올 수 있었다.


교회의 크기는 내가 다니는 Gethsemane Episcopal Church 보다 작지만 예배 출석 교인 수는 더 많았다. 게다가 특기할 만한 점은, 젊은 사람들과 그들의 어린 자식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 신자 대부분은 이미 50대 이상인데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배당 내에서 뭔가 묘사하기는 힘든, 그러나 분명한 젊은 에너지 비스무레한 것이 있었다.


예배당의 제단은 역시나 개신교 교회의 특성상 특별한 상이나 의자같은 것이 전혀 없는, 그야말로 무대 공간과 다름없었고, 예배 시작 전과 중간에 밴드가 나와서 찬양을 인도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전자 기타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밴드가 인도하는 찬양 시간에 참여하게 되었다. 예전 교회에서는 이런 찬송 ― 소위 모던 워십(modern worship)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 시간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지만, 성공회로 전입한 이후로는 이런 구성의 찬송 시간을 경험하기 참 힘들었다. 게다가 이날 찬송의 주류는 2010년대에 작사 및 작곡된 모던 워십 계열 찬송이었던지라 어느새 오르간과 피아노로만 구성된 반주에 익숙해진 내게 '새삼스러운 놀라움'이 가중되었다. 몇몇 신자들이 손을 들고 열성적으로 찬송하는 것을 보며 아무리 전례를 중요시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이런 뜨거운 찬송을 통해 마음을 여는 시간들이 종종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개신교 예배답게 예배의 대부분은 목사의 설교로 채워졌는데, 이 목사님은 청바지에 캐주얼한 셔츠를 입고 나와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Hiawatha Baptist Church의 주일 설교는 성경에 대한 집중 강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파워포인트 자료와 함께 진행되는 설교는 흡사 대학 캠퍼스에서 볼 수 있는 강사의 특강과 비슷했다. 이날은 지난주부터 시작한 판관기(사사기, Judges) 두 번째 설교였는데 2장 일부를 아주 집중적으로 해설하는, 그야말로 한국에서는 굉장히 보기 드문 형태의 설교였다. 설교의 내용은 하느님을 떠나 가나안의 신과 문화를 숭배하게 된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징벌, 그리고 회개에 따른 판관의 인도와 승리를 반복하는 판관기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조망하는 2장의 내용을 인류의 타락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비교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설교 시간이 거의 45분에 육박할 정도로 굉장히 길었는데, 그럼에도 설교가 굉장히 짜임새가 있어서 설교를 듣는 내내 성경 혹은 교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굉장한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따로 성찬례를 진행하지는 않았으나 뜻이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자체적으로 하는 분위기였다. 역시 개신교 예배의 꽃은 목사님의 설교지.


설교 중 슬라이드에 띄운 카슨(Carson)의 인용구를 약간 고친 문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One generation believes the Gospel, and the next generation assumes the Gospel, and the following generation denies the Gospel. (한 세대는 복음을 믿고, 다음 세대는 복음을 가정하며, 그 다음 세대는 복음을 부정한다.)


복음주의(evangelicalism)에 대한 강조로서도 읽히는 이 문구가 이 교회가 지양하는 바를 정확하게 드러내 주었다. 복음 이외의 다른 부차적인 것들에 신경쓰는 것이 잘못된 신앙의 양태라는 것을 강조하는 목사의 설교는 분명 이 교회가 소위 보수적이라고 불리우는 복음주의적 개혁주의를 표방한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게 한다. 뭐 그것이 나쁘다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젊은이와 그들의 아이들이 가득히 예배당을 채운 이 교회만큼은 다음 세대까지는 이 복음주의에 기반한 말씀이 오롯이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회개한 뒤 은총을 받고나서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믿음의 선배들이 누구였는지, 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른 채 다시 죄악에 빠져든 이스라엘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목사의 얼굴 위로 점점 노쇠화되고 신자 수가 줄어들어가며 활력을 잃어가는, 젊은이들이 떠나가는 한국 교회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