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 시절, 시즌 중에는 네이버 야구 라디오 중계를 늘 틀어놓는다는 동기가 있어서 '도대체 스포츠 경기가 뭔 재미가 있다고...' 하며 그게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프로 스포츠 경기를 정기적으로 챙겨보는 사람이 주변에 단 한 사람도 없었는데 대학에 들어와보니 재미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야구 경기를 매일같이 틀어놓는 사람, 시차 때문에 어제 늦은 새벽에야 시작하는 유럽 축구 경기를 시청하느라 오늘 수업 시간엔 꾸벅꾸벅 조는 사람, 이젠 국내 프로농구 팀들의 전략이 다 읽힌다며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고 불평하는 사람 등등 스포츠를 아주 자발적으로, 그리고 열광적으로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경험삼아 국내 혹은 국외에서 스포츠 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직접 관람을 시도하곤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특별히 그 스포츠 종목이 참 재미있어서 자발적으로 그 경기장을 다시 찾은 적은 없었다.
그게 바로 이번 시즌 아이스 하키를 보기 직전까지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퇴근하면 반드시 하키 경기를 스트리밍으로 보면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3피리어드는 대개 밥을 먹는 도중에 끝나게 된다. 핸드폰에는 앱이 깔려 있어서 미네소타 와일드가 골을 넣을 때마다 특유의 뱃고동 소리가 뿌~하고 울린다. 이번 시즌에 벌써 하키 경기장에 직접 관람을 간 게 네 번. 다음에 가거든 선수 이름이 뒤에 적힌 공식 저지를 구매하려고 벼르는 중이다. 매일 자기 전에 확인하는 것은 경기 결과와 순위표...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여덟살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OB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 경기가 벌어지던 잠실 야구장에 간 적이 있었는데, 고통스럽게 재미없어서 8회가 되기 전에 집에 돌아가자고 징징거렸던 장면과 함께 아직도 내 머릿 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내 뒷뒷자리에 앉아서 술판을 벌이던 아저씨들이었는데 ― 그 아저씨들이 '아주라'라는 말을 외쳤던 기억도 어렴풋이... ― 이제서야 왜 그 아저씨들이 술을 기울이며 스포츠 경기에 그렇게 성원을 보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프로스포츠 경기가 일상에서 나를 이탈시켜 지난 시간을 잠시 잊게 만든다는 것을, 거기에 마약같은 뭔가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안 것이다.
고로 내가 요즘 아이스 하키에 빠져 산다는 것은 내가 나이가 퍽 들었다는 것을 말한다. 섬뜩한 결론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
저도 어릴 때부터 스포츠라면 무관심이었는데 작년부터 테니스에 조금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올해는 동계 올림픽의 여자 컬링이 꽤 재밌어 보였고요. 본격적으로 찾아 보지는 않았지만요;; 제 경우엔 스포츠가 유전적으로 우월한 신체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해하면서 조금 관심을 갖게 된 거 같아요. 강한 의지나 전략 등 정신적인 부분이 쉽게 성취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스포츠에서의 드라마를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래봐야 여전히 조금밖에 흥미를 못 느끼지만요... 아이스하키 얘기를 하시니 저도 직관을 한 번 가볼까 흥미가 생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