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한 집 근처에는 St. Anthony Main Theater라는 극장이 있는데 AMC나 한국의 롯데시네마와 같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아니고 옛날 도심에 하나쯤 있을 법한 'OO극장'같은 지역 극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한 편 보는데 내야 하는 티켓 값이 무척 싸서 세금 빼면 무려 $8.5다. 이는 한국 돈으로 만원이 채 되지 않는 금액으로 동시간대 한국 영화관 티켓값보다 저렴하다.


아무튼 어제 주말을 맞아(?) 극장 마지막 밤 시간에 맞춰 최근에 개봉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Crazy Rich Asians)"라는 영화를 보았다.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데 ― 우리나라 책 번역 제목이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아시아 갑부들은 당신들과 다르다"라고 한다. ― 영화 내용은 전혀 모른채 그저 아시안계 배우들이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다고 하는 광고만 보고 영화관에 들어 갔더니... 세상에나, 이 영화가 찬사를 받으며 미국에서 흥행한다면 15년전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은 아마 미국 안방극장을 꽉 휘어잡고도 남을테다. 아마 박력 넘치는 박신양에 모두들 매료되어 "Let's go Aegi!"를 외쳐댈 듯하다. 이 영화에는 한국 신데렐라 드라마 스토리가 가지는 대부분의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1. 남자 주인공은 상상을 초월하는 갑부 집 아들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외부에서는 이를 감추고 있어 여자 주인공은 이 사실을 전혀 몰라야 했다.
  2. 여자 주인공의 출신은 형편 없지만 실력 하나는 있어 자기 앞가림은 할 줄 알아야 한다.
  3.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 집안에서 절대 환대받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비천(?)한 출신 성분과 남다른 자유분방함 때문이어야 한다.
  4. 남자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와 진정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해야 한다.
  5. 그리고 그 갈등 사이에서 여자 주인공은 주변 다른 여성들에게 시기과 질시를 받아 결국 상처를 받아야 한다.
  6. 그 여자 주인공을 돕는 여자 조연이 있는데 이 조연은 무조건 예쁘게 생기지는 않고 굉장히 개성 넘쳐야 하며 온갖 우스꽝스러운 코믹 액션으로 '약방의 감초' 역할을 강요받는다.
  7. 무슨 이유에서든 결국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야 한다. 그 여자 주인공이 결혼 이후에 시댁에서 겪게 될 무수한 고초와 차별, 멸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 언급도 안 되는 채로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겁니다.'


솔직히 우리나라 쉰내 나는 드라마가 이토록 경쟁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넷플릭스는 뭘 하는가. 한국 신데렐라&막장드라마를 어서 수입하지 않고!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