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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근 이 그림을 다시 떠올린 것은, 하루에 만난 어떤 이들과의 대화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면서부터였다. 점심에 만난 '도스(dos)'라는 사람과의 대화는 굉장히 힘겨웠다. 그와의 이야기는 A에서 출발했는데, 난데없이 D가 나오더니 두세 문장이 왔다갔다 오가는 사이에 불쑥 K가 나왔다. 그래서 마침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를 죽 이야기했더니 갑자기 D를 다시 얘기하지 않는 것인가. 그래서 또 따라가주면 이제는 F를 논하고 있다. 이런 것은 마치 한 지역에 산재한 고인돌 군(群)을 조성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여기에는 내 나름의 중요한 고찰이 숨어 있는데, 고인돌은 단 세 개의 돌로 구성된 단순한 조형물로 죽은 군장(君長)들의 무덤이라고 알려져있다. 즉, 고인돌은 세 개를 ㅠ자 모양으로 놓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세계이다. 힘겹게 돌을 쌓아 뭔가를 지으려고 했더니 단 몇마디에 상황이 종료되어 버리는 이 고인돌과 같은 대화는 지향하는 바고 없고 생명력도 없는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 지천에 널린 고인돌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차다가 대화하는 상대를 응시할 때 드는 느낌은 오직 이것 뿐이다 ㅡ 아, 시간을 죽였구나. 굉장히 흥미로운 것은 이런 대화의 당사자들은 정말이지 시간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대화를 종종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젠장맞을!! (그런 영양가 없는 통화와 맥락없는 문자들을 사랑의 증표라고 철썩같이 믿는 그네들의 여자친구들이 불쌍할 뿐이다.)
그런데 세상엔 그런 끔찍한 사람들만 있지는 않다. 바로 저녁에 만난 '쎄로(cero)'같은 사람은 다른 경우에 속한다. A에서 시작된 대화는 상식을 따라 B로 이어지며 가끔은 B' 와 B"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끔 D로 전환되는 순간이 있지만 적어도 이전의 K와 같은 식스센스급 반전은 아니다. 나는 이런 대화에서 재미를 느끼고 안정을 느끼게 된다. 내가 뭔가 말하고 있구나, 그는 뭔가를 듣고 있고 대응하는구나, 그러면 나는 떠 뭔가를 해야지, 그런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 와중에 이 사람이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내 나름대로 그리게 된다. 그것은 고인돌처럼 죽은 조형물이 아니다. 그것을 굳이 비유하자면 바르셀로나(Barcelona)의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와 같다. 그것은 꾸준하게 지어졌고, 지어지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지어질 무언가이다. 아직 내부는 정리해야할 게 많은 미완의 건축물 ㅡ 그러나 성당이라는 기능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계획된 것이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이런 예술작품을 창조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창조를 위해 투입된 시간과 노력은 대화를 통해 완성된 실용적인 시공간으로 보상받게 될 것이며, 그것은 이미 경험한 것 너머의 세계에서 일찍 수확한 열매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결국 대화로 확인되는 법이다. 그것이 입의 대화든, 몸의 대화든, 영적인 대화이든, 그들의 사랑은 그 대화의 결과물이 무엇이느냐에 따라 측정된다고 나는 믿는다. 내 세상 속에는 서울과 뉴욕같은 멋진 대도시들도 있지만 슬프게도 연천 전곡리와 같은 고인돌 유적지들도 있다. 내가 감히 바라는 것은 런던이나 방콕같은 도시들이 내 안에 더 많아지는 것이며, 하나 더 보태서 바란다면 그 어딘가 새로 조성된 그 도시 안에서 편히 정주(定住)하는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