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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전이점(琉璃轉移點, glass transition temperature)은 결정질의 고체를 구성하지 못하는 고분자에서 흔히 관찰되는 유리전이라는 특별한 변화가 나타나는 온도이다. 대부분의 고분자는 저온에서 저분자처럼 결정구조를 가지는 고체를 형성할 수 없으나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액체와 같은 유동성을 가지지도 못하는데 우리는 이러한 고분자 상태를 딱딱한 유리와 같다고 하여 glassy하다고 표현한다. 이들은 분명히 고체와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고체를 규칙적인 배열을 가진 결정으로 정의할 때 비정질 고분자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고체의 일반적인 성질을 보여주는 액체인 셈이다. 이제 이 고분자를 가열하여 온도를 높이게 되면 고분자의 운동에너지가 증가하게되면서 유동성을 보여주는 순간이 나타나는데 이렇게 되면 고분자는 말랑말랑한 고무와 같은 상태가 되고 이를 rubbery하다고 표현한다. 이 유리질 상태와 고무질 상태 사이의 전이를 유리전이라고 부르고 이 온도를 유리전이점이라고 한다. 유리전이점은 고분자의 특성인데 고분자의 분자량 및 조성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심지어 측정하는 방식이나 조건에 따라 유리전이점은 각기 다르게 얻어진다.
한편 연화점(軟化點, softening point)은 고분자 수지나 아스팔트와 같은 물체가 가열되어 변형이 일정 정도 진행될 때의 온도를 말한다. 연화점은 보통 이러한 물질들을 성형할 때 적합한 온도가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한 용도로 측정되는데 이 측정 방식이라는 게 굉장히 독특하다. 어떤 방식은 시편에 위에 맞닿은 침이 고온에서 연화된 시편 안 일정 수준까지 들어갈 때의 온도를 연화점으로 읽으며, 다른 방식은 연화되어 중력에 의해 일정 거리 낙하했을 때의 거리를 연화점으로 부른다. 이 측정 방식들은 보통의 자연과학자들이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이상한 방식인데, 어떠한 과학적 현상에 따른 급격한 변화에서 딸려나온 측정값들이 아니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정한 값어치를 만족시키느냐 못 만족시키느냐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 것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건 너무 공학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연화점이 하등한 측정 대상이냐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고분자로부터 제품을 만들어야하는 사람들에게는 녹는점이나 유리전이온도는 하등 쓸모 없는 물리화학적 값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상전이나 고분자의 유동성이 아니라 '지금 당장 제품을 성형할 수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장담컨대 르네상스 시기 이후 다양한 유리공예품을 생산하는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던 이탈리아의 장인들은 유리전이온도는 몰랐어도 연화점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그 모든 예술과도 같은 산업을 견인했을 것이다. 즉, 연화점은 실제 현장에서 더 유용한 개념이다.
요즘 드는 생각이 그렇다. 박사과정 이전의 삶은 녹는점의 삶, 그 이후 취직 전까지는 유리전이온도의 삶, 그리고 지금부터는 연화점의 삶이라는 생각. 학문은 교과서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개념과 이론은 실측과 응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연구의 방향도, 삶의 방향도 조금씩 상아탑 안에서 밖로 빠져나온 것 같고 좀 더 실용성을 추구하는 면모를 갖췄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것만이 연구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 ㅡ 모든 것에는 균형이 있어야 한다. 연화점을 측정하는 사람이더라도 유리전이온도와 녹는점의 물리학적 개념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그런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는 그런 거 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