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좋았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해야할 것들을 몇 개 생각해왔고, 그 중 하나는 용석이와도 한번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을 제대로 이루고 돌아가게 되었다.


유감스러운 것은 유감스러운대로,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즐길 것은 모두 경험하고 가는지라 정말 좋았다. 특히 둘째날 세인트폴 대성당(St.Paul's Cathedral)과 마지막날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서의 성찬례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신학 혹은 성직의 길을 걷는다는 게 비록 엄청난 짐을 짊어져야하는 길임을 알고 있으나 그게 매력적으로 보일 정도로 말이다. 역시 여행은 풍경사진이나 인스타그램 해쉬태그용 맛집이 아니라 '경험'이어야 한다. (사람은 온데간데 없는 풍경과 음식만을 사진으로 담는 데 혈안이 되는 것은 소녀들이나 하는 짓 아닌가? ㅡ 이건 우리 아버지의 논리이다.)


오늘 영국 하원에서의 토론이 흥미로울 거라고 해서 들어갔다가 2시간이나 거의 기다리느라 진이 다 빠질 뻔했지만, 오랜만에 그 녹색 소파에 동네 반상회하듯 둘러 앉아 아주 유려한 솜씨로 말을 하는 영국 하원의원들을 보며 참 재미있게 사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용석이에게 카카오톡 통화를 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우리는 같은 사안에 대해서 하나는 철학자의 자세를, 다른 하나는 자연과학자의 자세를 취한다는 결론을 얻었고, 어쨌든 그와는 관계없이 연애는 안 되는 일이라는 독립적인 정리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돌아가거든 추석 연휴 기간에 한 번 불러 술잔이나 기울일 예정이다.


아에로플로트를 타고 모스크바를 통해 귀국한다. 잠깐 모스크바에 하루 정도 머물까도 생각했는데, 여행에 의지가 없다면 외국에 갖다 놓더라도 귀국하기에만 골몰하게 된다는 사실을 느끼고 적잖이 놀랐다. 아무튼 돌아가자!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