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의 짧다면 짧은, 혹은 길다면 긴 나라(奈良) 여행을 끝내고 지금은 전일본공수(ANA)의 비즈니스 라운지에 앉아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아침으로 간단하게 유부초밥과 카레덮밥을 먹었는데 괜찮았다. 괜히 밖에서 뭘 먹고 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몇 가지 느낀 바가 있는데 대략 세 가지로 압축이 되겠다.


1. 나라는 우리나라의 경주(慶州) 혹은 부여(扶餘)의 느낌이 드는 오래된 도읍이다. 정작 도읍의 역할을 하는 궁성(宮城)이 보존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그러하지만, 궁성 대신 이곳이 도읍의 역할을 능히 감당했으리라고 생각될만한 거대하고도 멋진 건축물이 있다는 점을 따지자면 경주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겠다. 주점보다 사찰이 더 많다고도 전해지는 이 도시는,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며 견학하는 즐거움을 여행 중에서 맛보길 원하는 나같은 여행객에는 딱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남북국시대(南北國時代)에 해당하는 8세기경에 일본 정부는 이곳에서 약간 떨어져있는 후지와라쿄(藤原京)에서 헤이조쿄(平城京)로 천도(遷都)를 감행했고, 지금은 폐허가 되어 복원 중에 있지만 꽤 넓은 주작대로(朱雀大路)와 대극전(大極殿)이라고 하는 정전(正殿)을 가진 거대한 궁성을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궁성의 정동편에는 지구에 현존하는 목조 건물중 최대라고 하는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전(大仏殿)이 있어 당시 이 도시가 얼마나 으리으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건축물의 건립 사실은 당시 일본은 대규모 토목 공사를 벌일 인력과 자재를 수급할 수 있을 정도로 중앙집권적인 국가였다는 것, 그리고 당시 일본의 신민(臣民)들이 이런 노역 때문에 꽤나 고초를 겪었을 것을 의미한다. 알다시피 한국에는 이런 거대 목조 건축물이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고 기록상으로는 경주 황룡사(皇龍寺)나 익산의 미륵사(彌勒寺) 정도가 그에 비견될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둘 중 하나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은 그와 같은 거대한 건물들을 짓는 데 관심이 없었거나, 혹은 백성들의 눈치를 살피기 위해 그러한 노역을 불필요하게 지우지 않았다는 것. 물론 나는 후자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처럼 평등에 대한 뚜렷한 소신과 부당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항거 정신,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일본과 크게 다른 점이며 이것이 우리나라를 일본보다 더 뛰어난 나라로 만들어 줄 중요한 국민적 기질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내에 거대한 목조 혹은 석조 역사적 건물이 없다고 슬퍼하지 마시라. 선조들은 우리에게 관광 자원을 적게 물려주셨을지라도 굉장한 민족성을 우리의 DNA에 남겨주신 셈이니.


2.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이 과거 미개했을 때 우리나라가 가르쳐서 사람 만들어놨더니 메이지 유신 이후 급성장하여 배은망덕(背恩忘德)하게 한반도를 집어삼켰다고 주장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한국 역시 중국이 다 업어주고 키워준 것이라고 얘기하는 중국인들의 주장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떠먹여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며 성장한 것이 아닌만큼, 일본 역시 자주성과 주체성이 그 문화 안에서 강하게 살아남아 있다. 더욱이 대륙과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은 점으로 인해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적 향취는 훨씬 더 짙게 남아 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가 아는바 일본은 끊임없이 사신을 신라, 발해, 그리고 수나라 혹은 당나라에 보내면서 교류를 지속했고 이를 통해 대륙 및 반도와 상호작용을 시도했다. 동아시아 문화의 남상(濫觴)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영향이 일본 열도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중간에 위치한 한반도의 여러 왕국들의 역할이 중요했음에 틀림없고 실제로 뛰어난 인물들이 일본에 가서 큰 활약을 펼친 것에는 틀림이 없으나, 이것을 가지고 일본을 일방적으로 가르쳤다고 하면서 당시 일본 사람들을 열등한 부족 취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대륙에서 반도로, 반도에서 열도로 이어지는 뚜렷한 경향이 있되 이를 문화와 사회 교류의 한 단편으로 이해하는 것이 국제적인 감각에서 더 객관적이고도 이성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고 생각한다.


3. 나라에 하루도 안 머물고 가는 것은 좀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라공원(奈良公園)의 사슴이 참 유명하고 도다이지의 대불전이 유명한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그 외에도 즐길 거리가 소소하게 많은 동네가 바로 나라이다. 도쿄(東京)이나 오사카(大阪)처럼 왁자지껄한 대도시는 아니지만, 그래서 밤이 되면 다소 고요해지는 동네이지만 1,300여년 전의 일본을 감상할 마만한 여유를 가진 여행객에는 참으로 좋은 여행지라고 생각한다. 겁도 없이 요시노(吉野)를 묶어서 다녀왔지만, 기왕 간사이(関西) 지방을 평생에 한 번만 보고 돌아갈 것이 아니라면 나라와 요시노를 묶어서 적어도 2박3일 정도를 보내는 것이 참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일본 수출 규제 건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나라, 특히 나라공원에서 사슴과 상대하는 중국인 관광객 수는 정말로 많았다. 끔찍할 정도로.) 이번 3박4일간의 요시노-나라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연초에 아무런 구체적 계획없이 두루뭉술하게 예상했던 여행 치고는 굉장히 값진 경험이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