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젖니를 모두 빼낸 뒤, 그러니까 고등학생 이후로 치과에 간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특별히 이가 아프거나 한 적도 없었고 충치나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보여서 치과를 찾아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상황이 바뀐 것이 작년 2월부터 치실을 쓰게 되면서부터였다. 생각보다 이 사이에 끼는 음식물 찌꺼기와 프라그, 치석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된 나는 예전보다 이를 더 주의깊게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윽고 치아 표면 굴곡에 갈색의 가느다란 선들이 보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었기에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었다.


그런데 최근 동생이 충치로 인해 신경치료를 했고, 크라운 때문에 몇 차례 치과에 드나드는 것을 보면서 나도 어쩌면 충치로 인한 부식이 치아 내부에서 거대하게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니나다를까, 어느새 안쪽 어금니에 갈색 점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인터넷에서 급히 찾아보니 이것은 충치의 전조였다. 드디어 내게도 올 것이 오고 말았다. 하긴 이닦기를 예전보다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안쪽 어금니는 잇솔질로 충분히 깨끗하게 하는 것이 여간 까다롭지가 않지 않던가.


10여년만에 처음 찾는 치과. 동생의 추천으로 찾아간 서울대입구역의 '서울은치과'는 꽤나 내부가 쾌적했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런 치과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내부에서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고, '여기가 내가 아는 치과 맞나?' 싶을 정도였다. 간단한 문진 이후에 예정대로 X-ray를 찍었는데, 예전에는 잇몸 뒤에 건판같은 걸 대지 않았던가? 미국 출입국시 360도 회전하며 찍는 X-ray 기계를 보는 듯 했다.


이윽고 나온 X-ray 사진. 다행히 치아 내부에서 진행되는 충치는 없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는 사랑니가 위에만 2개가 있고 아래에는 전혀 없었다! 위에 있는 사랑니도 하나는 곧게 나고 하나는 옆으로 누워서 나는데 그나마 잇몸 깊숙히 박혀 있어서 나오게 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ㅡ 그 말은 누워서 나는 사랑니의 경우 잇몸 밖으로 나오게 될 경우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치과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게 치실 사용도 좋고 그렇게 심각한 문제를 X-ray 사진에서 발견할 수는 없었으나 다만 잇몸이 다소 내려 앉아 바람이 불 때 시린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라고 얘기했고 ㅡ 맞는 말이었다. ㅡ 치실을 잘 활용해서 남들보다는 큰 치아 사이의 공간에 끼는 음식물을 잘 제거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내 입속을 구석구석 보는데, 정말 거울을 통해 내 눈으로 본 것보다 적나라한 치아의 모습이 모니터를 통해 들어왔다. 예상대로 오른쪽 안쪽 어금니는 윗니와 아랫니 모두 갈색의 점이 보였다. 다만 윗니는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OK이지만 아랫니 검은 점은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 외의 다른 갈색 선의 경우 아직 이 정도라면 심각한 수준이 아니고 더 진행되지 않게끔 잘 관리한다면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치아의 마모 상태, 형태 변형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고, 마지막으로 아랫니 앞니 뒷면을 보여주시는데... 오 이런, 거기는 치실로도 제거가 쉽지 않은 치석이 뿌리부터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스케일링도 확정.


그래서 10여년만에 치과에서 드릴 소리를 들어가며 치과 치료를 진행하였다. 드릴로 충치로 부식된 치아를 깎아 내고 레진을 부어넣은 뒤 파란색 파장의 빛을 쏴 주어 중합을 진행한다. 어느 정도 가교가 되면 이를 다물어서 모양을 성형한 뒤 마저 빛을 조사해 중합과 가교를 최종 완료하였다. (드디어 고분자화학을 하는 내 몸에도 고분자 중합의 원리가 스며들게 되었다!) 아직은 이를 다물면 오른쪽 어금니에 뭐가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건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차차 익숙해질 것이기에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검은 점 같은 것은 사라지고 대신 흰 선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스케일링은 마치 파워 치실을 하는 것 같았다. 가끔 치실을 강하게 할 때 '앗, 좀 아플 거 같다.'라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스케일링은 그걸 여러번 하는 느낌 ㅡ 마치 치실로 박을 타는 그런 느낌 ㅡ 이 들었다. 그렇게 아픈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편안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스케일링이 끝나고 나서 혀로 아랫니 앞니 뒷부분을 대어 보니 정말 그 자리에 있었던 그 딱딱한 돌덩어리들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치실이나 전동 칫솔로도 제대로 손대기가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스케일링 받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스케일링은 1년에 1번 보험처리가 되어서 값도 많이 쌌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접수처에서는 6개월에 한 번씩 검진을 받으러 치과에 방문하라고 권고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치과 검진은 그리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므로 학교 근처에 있는 이 치과에 정기적으로 오는 것은 괜찮은 일인 것 같다. 앞으로 치아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치과 뿐 아니라 일반 건강 검진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건강한 치아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말을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되어 기분이 뿌듯했다 :)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