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지주일(聖枝主日)이라고도 하는 종려주일(Palm Sunday)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수난하기 전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당시 수많은 유다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호하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쳤던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오늘 감사성찬례 시작 때에는 신부님이 나뭇가지들 ㅡ 어머니는 나중에 이것들이 종려나무 가지일 수는 없고 소철(蘇鐵)임을 알려주셨다. ㅡ 에 성수(聖水)를 뿌리며 축복하셨고 모든 교인들이 이를 나눠가졌다.


하지만 오늘 감사성찬례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청년주일로 지키는 첫 예배였기 때문이다. 예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모두 전례의 참여자이지만 오늘 나는 특별한 참여를 했다. 바로 제2독서 낭독을 한 것이다. 서방 교회 전통에 따르면 예배 때 성경을 총 세 번 읽는데, 1독서는 구약 성경의 말씀이, 2독서는 서신서의 말씀이 낭독되며 사제나 부제만이 복음서의 말씀을 읽고 말씀의 전례를 진행할 수 있다. 내가 오늘 맡은 부분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빌립보서) 2장 5절부터 11절이었다. 예수의 죽음에 관한 사도 바울로(바울)의 권면이었다. 성공회 감사성찬례 독서는 처음이라서 잘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잘 해낼 수 있었다.


특별한 것은 더 있었다. 나는 성공회 안양교회에 출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찬양팀 싱어로 섬기게 되었는데, 오늘은 월례찬양예배가 감사성찬례 뒤에 있었고, 그리고 오후 4시에는 성공회 중보기도회 찬양까지도 섬겨야 했다. 이 모든 빡빡한 일정들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잘 해낼 수 있었다.


혹자는 내게 '일하기 싫어서' 혹은 '사람이 싫어서' 교단과 교회를 옮겼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를 섬기고 있고 교회 사람들과의 관계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성공회 신앙의 관점과 철학에 깊이 긍정하기 때문에 교단과 교회를 옮긴 것이다. 물론 장로교의 칼뱅주의(Calvinism)가 내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성공회는 극단적인 예정설과 개혁주의를 그리 환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대놓고 배척하거나 이단시 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사상이 어떻게 하면 교회의 전통과 이성, 그리고 성서의 가르침과 잘 조화될 수 있는지를 궁구(窮究)하는 것이 성공회 신학자들과 신자들의 태도이다. 찬양 예배와 감격적인 영성 훈련, 그리고 교회의 일치 및 조화에 대해 성공회 어르신 신자들이 장로교 어르신 신자들보다 더 열려 있는 태도로 참여하는 것을 보게 되면 '과연 우리 나라의 개신교회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단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오늘 성공회 중보기도회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소수 교단인 성공회가 맞닥뜨린 작금의 문제들을 잘 극복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제의 기도를 여럿 하였다. 비록 성공회에서 신앙 생활을 한 지 넉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나는 여기에서의 가르침이 진실로 내 생각과 잘 부합하고, 또 내 양심과 사고에 비추어볼 때 어긋남이 크게 있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 그렇기에 성공회 교단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목놓아 기도했다. 오늘 교회의 어떤 청년 학생은 주변인들에게 '성공회'라고 얘기하면 하도 사람들이 그게 뭐냐고, 이단 아니냐고 묻기에 그것에 일일히 답하기 귀찮고 짜증나고 싫었기에 언제부턴가 '교회 다닌다'라고 얘기하고 입을 다물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성공회'라고 당당히 얘기하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과 오해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다. 그래야 사람들이 성공회가 주장하고 좇는 가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볼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까지 기독교인인 '내'가 늘 자랑스러웠고 내세울 만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공회 교인'임이 자랑스러웠고 내세울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수님이 가장 자랑스러운 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