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포닥 생활을 시작하면서 연구 말고 해 보고 싶었던 것 세 가지가 바로 외국어 공부, 골프 강습, 그리고 요리였다. 골프는 지난 달부터 강습을 시작했고... 그 다음으로 외국어 강습을 받기 위해 여러 학원 및 학교 언어교육원의 개설 강좌를 둘러보았지만, 포닥의 일상과 내 언어 수준에 딱 들어맞는 수업을 발견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독일어의 경우 괴테 인스티투트와 학원을 뒤져봤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고, 스페인어나 러시아어 수업은 그리 급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결국 선택한 것은 언어교육원의 영어 회화 수업. 지난 주에 레벨 테스트를 봤는데 운좋게(?) 상급자(advanced)에 해당하는 level 5를 획득해서 현재의 회화반에 편성될 수 있었다. 레벨 테스트 때 어젠 뭐했니, 오늘을 뭐 할거니, 너의 희망은 뭐니, 이런 걸 물어서 매우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는데 그냥 친구랑 얘기하듯이 말했다. 레벨 테스트를 진행한 원어민 선생은 '대화 중에 약간의 문법적 오류들이 드러나지만, 당신 말하는 게 유창하고 또 자신감이 있어서 level 5를 추천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대성공.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수강 시간이 매주 월, 수, 금 오전 7시 반이라는 것. 세상에, 10년 반 남짓한 내 서울대학교 생활 기간 중 오전 7시 반까지 학교에 정기적으로 나온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다행히 자동차를 몰고 나올 수 있어서 제 시간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를 위해서 앞으로 월, 수, 금은 아침 6시에 일어나 부산스럽게 준비해야만 한다. 오늘이 두 번째 수업이었는데 아직까지는 할 만하다.


한 반의 수강생은 대략 12명 정도인 듯 싶다. 출신이 매우 다양한데 인문계 학생들이 좀 더 많은 편이다. 학부 신입생도 있고 나와 같은 박사후연구원도 있다. level 5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말하기를 꺼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하는 편이었다. 나도 말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게다가 이제는 수강반에서 나이가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니 ― 슬프게도 수강생 중 2번째인 것 같다. ― 거리낄 것이 무에 있단 말인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람들은 내 발음이 영(英)식 발음이라며 상당히 신기해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남아공 영어라고 둘러댔다. 아무튼 사람들도 단 두 번의 수업이 지나갔을뿐이지만 내가 좀 특이한 사람이라는 것을 대번에 눈치챘을 것이다.


레벨 테스트 결과에 따라 언어교육원 웹사이트에서 수강 등록을 할 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10년전에 level 3의 회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때가 학부 1학년 때의 일이니 진짜 까마득한 옛일이다. 내 기억에 그 반에서 나는 유일한 신입생이었고 모두들 나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소심하기도 했고 내 말이 틀리면 어떻게 하나 전전긍긍했던 20살의 성수는 그 영어 회화 수업에서 많이 말하지도 못했고 또 배우지도 못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이 수업을 즐기고 있다. 웬만하면 말을 많이 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틀리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으며 ― 내가 습관적으로 I got realised it 이라고 얘기했더니 선생님은 I got it, 혹은 I realised it 이라고 얘기하지 그렇게 붙여쓰는 건 좀 글쎄... 라고 지적해 주셨다. ― 회화 시간을 꾸며나가고 있다.


이 극적인 변화의 배경에는 2008년의 스페인 여행이 있다. 영어도 아닌 제 2외국어인 스페인어,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은 영어를 못하고 오직 스페인어만 쓸 수 있었다. 소심하게, 틀리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스페인어를 얘기했다가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는커녕 완전히 고립되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무척 컸던 첫 주였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무작정 말하고 부딪히기로 했다. 오히려 사람들은 우물쭈물하는 나보다 어떻게든 안 되는 말을 해보려고 애쓰는 내게 더 많은 도움을 주기를 원했고, 실제로 그것을 통해 많은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 여행 이후 나는 좀 더 뻔뻔한 사람이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무척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그 뻔뻔한 상태를 지금의 영어 회화 수업 시간에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매우 바람직한 자세라고 감히 자평한다.


나는 이번 영어 회화 수업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다. 바로 '과학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는' 영어 회화에서 익숙한 표현을 잘 숙지하고, 문법적으로 자주 반복하는 실수를 고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아.. 이거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하는 것을 자주 통감해야 하고, 동시에 내 발화에서 발생하는 표현상의 혹은 문법상의 문제점을 자주 내비쳐야 한다. 즉, 다시 말하자면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조금 수고로운 일이긴 하지만 의욕적으로 시작한 이상 꼭 이뤄내고 말겠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