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부터, 그리고 특별히 지난 열흘간 무척 바빴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진행하는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 중 하나인 '박사후국외연수' 사업에 지원하고자 계획서 및 제반 서류들을 준비하는데 에너지를 쏟았다. 지난 겨울에 컨택한 결과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온 분이 계셔서 그 분의 초청장을 첨부한 뒤로 계획서 작성에 박차를 가했고, 그 결과 어제 최종적으로 20장 정도의 계획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사실 지난 이틀간은 3D MAX와 Adobe Illustrator 작업에 온 정신을 쏟았다.


계획서를 작성해보니 나도 7년여의 시간동안 손병혁 교수님 밑에서 지도를 받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내 지도교수님 스타일을 따라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과 함께 작성한 과제 첫 계획서만 해도 벌써 다섯 건은 족히 넘는 것 같다. 그 계획서에는 교수님의 '철학'같은 게 담겨 있다. 이러한 문서는 이러한 식으로 작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 이러한 그림이 있어야 한다, 등등. 그렇게 훈련받다보니 나도 그러한 형식과 구성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렇게 써 낸 과제 계획서가 제안한 연구 중에는 아쉽게도 선정되지 못한 것들도 있지만, 선정된 것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우리 연구실이 먹고 살 수 있었다. 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스스로도 이러한 면을 짐짓 깨우친 바가 있어 교수님께 감사의 글을 짤막히 담아 보내드렸다.


이번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은 2016년 상반기를 끝으로 종료된다. 그래서 아마 지원 가능한 모든 사람들이 이번 사업을 노리고 지원서를 엄청 썼을 것 같다.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로 본 사업의 연수 혜택 대상자 수가 60명으로 대폭 감소하면서부터 경쟁률은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했는데 들리는 말에 따르면 국외연수자 경쟁률은 대략 4:1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전체 경쟁률일뿐, 실제로는 많은 이들이 미국에서 연수하기를 소망하기 때문에 미국 포닥의 경우 경쟁률이 거의 10:1을 넘긴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별 쿼터가 있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전체 추천 대상자 중 절반 이상을 뽑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 미국을 지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넉넉히 안심하며 지원서를 쓸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계획서와 내 연수 능력이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면 미국이 아니라고 해서 한국연구재단이 날 지원해 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이든 유럽이든 아시아든 '연수자가 연수에 적합한 사람인가?'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가지 약간 아쉬운 것은 지난해 겨울철부터 투고했던 논문 두 편이 이번 사업 지원 전까지 게재 완료되지 못했던 점이다. 실적을 더 늘릴 수 있었던 기회가 사라진 것은 다소 아쉽긴 하다.


하반기부터는 '리서치 펠로우'라는 새로운 과제 체제가 출범하는데, 국내, 국외, 대통령포닥 구분을 없애고 총 400여개 이상의 개인별 프로젝트로 운용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연구 체계가 조금씩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것 같다. 뭐 아직까지는 박사를 하고 해외 유수 그룹에서 포닥을 하고 교수로 임용되는 것이 정식 코스로 인정받고 있지만, 십년 뒤에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중요한 건 결국 개인이 그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얼마나 양질의 연구 성과를 내놓는가겠지만 말이다.


교수님이 최종 업로드 후에는 항상 마음을 비우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국외연수자로 추천되면 참 감사한 일이겠지만, 설사 되지 않는다해도 내 생이 끝장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지금의 나는 무척 지금의 연구 환경과 생활 환경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