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9월 8일 내 생일날 Ellison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갔다가 'Happy Birthday!'라는 인사와 함께 공짜 미식축구 경기 티켓을 받게 되었다. 안 그래도 주말에 미식축구 경기가 있는데 보러 갈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선뜻 선물로 표를 받게 되니 안 가고 배길 수가 없었다.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전미 체육 협회) 산하에는 무려 24개의 종목이 지정되어 있고, 그 중 미식축구는 아주 인기가 많고 유명한 종목 중 하나이다. 미국에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흔히 들어온 프로야구라든지 프로농구, 아이스하키보다도 훨씬 큰 규모와 인기를 자랑하는 게 미국 프로 미식축구인 NFL(National Football League)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학에는 NCAA 산하 미식축구팀이 존재하는데 팀이 워낙 많아서 1, 2, 3부 리그가 있고 그 중 1부 리그의 인기는 거의 웬만한 프로 스포츠 뺨친다고 한다. (실제로 오늘 가서 보니 관중 수가 4만이 넘었다. 세상에.) 미네소타 대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네소타 골든 고퍼스(Minnesota Golden Gophers)라는 미식축구 팀이 있고 1부 리그에 속해 있다. 오늘 경기는 인디애나 주립 대학교(Indiana State University) 팀과의 경기였다.


날씨는 생각보다 화창했고 또 바람이 많이 불었다.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이라서 선크림을 바르고 갔었어야 했는데 그만 잊고 말았다 ― 그 덕에 나는 얼굴과 목 왼쪽 부분이 빨갛게 익었다는 걸 경기 끝나고 화장실 간 후에야 알았다. 아무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골든 고퍼스 팀의 유니폼을 입고 TCF Bank Stadium 으로 들어서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행렬을 보고 대학 미식축구팀의 경기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는구나 짤막하게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US Bank Stadium에서 프로 미식축구 팀인 미네소타 바이킹스(Minnesota Vikings) 경기 때에는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떼거지로 시내에 가득하더니 말이다. 그 사람들이 죄다 옷을 갈아입고 이리로 모여들었나?


거대한 운동경기장은 오랜만에 찾았다. 생각보다 TCF Bank Stadium의 크기는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도 더 크게 느껴졌고, 비록 만원 관중은 아니었지만 한눈에 봐도 참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대학 미식축구팀의 경기라서 그런지 한쪽에는 젊은 학부생들이 가득 모여 있었는데 저마다 골든 고퍼스 팀의 대표 색깔 ― 마룬(Maroon)이라 하는 적갈색과 황금색 ― 으로 디자인된 각양각색의 옷을 입고 신나게 응원을 해대고 있었다. 서포터 앞으로 미네소타 대학의 마칭 밴드(Marching Band)가 신나게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총 세 팀의 치어리더 팀이 응원전을 펼치며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내가 경기장에 입장했을 때에는 선수 소개 및 예포 발사를 마치고 국가가 연주되고 있었다. 마침 오늘은 9.11 테러가 일어났던 날 전날이었으므로 선수, 스탭, 관중 모두 9.11 참사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순서를 가졌는데 필드에는 거대한 성조기가 여러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윽고 경기는 시작되었고 요란한 응원과 박수, 탄성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미식축구 룰을 세부적으로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는 알고 있다. 예를 들면

  1. 10야드 전진하기까지 네 번의 다운(down) 기회가 주어지며 10야드를 넘어서면 4번의 기회는 처음부터 다시 주어진다.
  2. 중앙으로부터 50야드 전진하여 공을 들고 다운을 하게 되면 터치 다운(touch down)이라고 부르며 6점을 얻는다. 터치 다운 이후 공을 차서 말굽 모양의 골대(?) 안으로 통과시키면 1점을 추가로 얻는다. 이것 외에 돌진하여 터치 다운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면 2점을 얻는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이날 경기에서는 볼 수 없었다.
  3. 필드에서 공을 차서 말굽 모양의 골대(?) 안으로 통과시키면 3점을 얻는다.
  4. 공수 교대는 공격팀이 4번의 다운동안 10야드를 전진하지 못하거나 터치 다운을 하게 되면 일어나며, 중간에 수비팀이 공을 가로채면 턴오버(turnover)라고 해서 공수가 교대된다.
  5. 경기는 쿼터제. 각 쿼터당 15분이 주어지며 공수 교대를 위한 쉬는 시간 이외에는 시간이 멈추지 않고 축구처럼 시간이 그냥 지나가는데 추가 시간은 없다.
그런데 반칙이라든지 포지션 이름 ― 예를 들면 쿼터백(Quarterback)이라든지... ― 은 잘 모르겠고, 또 축구에서 터치 아웃이라고 부르는 가장자리 흰 선 밖으로 나갔을 때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중간중간 심판이 제스처를 취하면 무슨 결정을 내리는 말이 마이크를 통해 고지가 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뭐 아무튼 세부적인 것을 빼고라도 미식축구란 전진하여 고지를 점령하는 땅따먹기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비록 낯설지라도 재미있게 관전할 수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미식축구 경기 중에는 마치 프로야구처럼 중간 휴지 기간이 많으며 이 시간동안 다양한 이벤트 및 광고가 전광판을 통해 방송된다. 예전에 보스턴 레드 삭스 경기를 보스턴의 펜웨이 파크(Fenway Park)에서 봤을 때 공수 교대 및 이닝 사이 휴식 기간, 하프 타임 등등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이벤트, 광고가 쏟아져 나왔었는데 미식축구도 마찬가지. 똑같은 쿼터제인 프로농구에 비하면 배는 더 많은 것 같았다. 쏟아져 나오는 광고는 아마 이 거대한 경기 체계가 유지될 수 있는 든든한 자금줄이 아닐는지 싶기도 하고...

여기에 출전하는 학생 선수들은 모두 NCAA에 가입되어 있으며 대학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고 운동하는 선수들이라고 한다. 한 학교에 미식축구 선수가 백여명이 넘는다면 미국 전역에서 미식축구를 하는 학부생들은 수천명 될 것이다. 거기에다가 NCAA 산하 24 종목의 선수들 수를 다 합치면 거의 수만명의 학생들이 운동을 학업과 병행하며 즐기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아마 이들 중에서 능력이 더 출중한 사람들은 아예 프로선수로 진로를 정하게 되겠지. 올림픽에서도 항상 1위를 차지하는 미국 스포츠의 저력은 이와 같이 끊임없이 인재를 양성해 내는 대학 스포츠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엘리트 체육인 중심의 대한민국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번 2016 리우 올림픽 이후로 우리 나라의 체육계 구조를 바꿔 나가며 생활 체육인 중심으로 서서히 전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그러한 구조가 확립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운동을 널리 할 수 있는, 그것도 열렬한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경기를 즐길 수 있는 미국 스포츠, 그리고 그것을 품고 있는 미국 사회가 참 부럽게 느껴졌다.

또한 선수들 뿐만 아니라 토요일 오전부터 경기장에 나아와 열심히 응원하며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노라니 취업과 스펙쌓기에만 몰두하는 대한민국 학부생의 모습이 생각나서 저들이 참 많이 부러웠다. 패권을 쥐고 있는 나라의 국민이 가지는 특권이랄까? 지구상의 최강국의 시민에게 내재된 그 여유 혹은 그 자신감 같은게 느껴지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거나 묘사하기가 참 힘들다. 여기 미네소타 대학에서 연구하는 미국인들에게서도 언뜻언뜻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참 부럽기도 하고 우리가 극복해내야 할 것이라서 답답하기도 하고 그랬다.

이날 경기 결과는 미네소타 58 - 인디애나 주립 28 로 미네소타 골든 고퍼스의 대승이었다. 사람들은 일찌감치 승리를 결정지은 팀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거의 2시간 반동안 게임이 진행되었는데, 생각보다 그리 길지도 또 짧지도 않았으며 나름 재미있게 경기를 보았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