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룹 멤버들과 집앞 Little Szechuan 이라는 중식당에서 조촐한 저녁 회식이 있었는데, 여권을 소지한 덕택에 드디어 식당에서 술을 시켜 먹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 것이 지난달 미네소타 화학/화공과 한인 대학원생 환영회 때였으니까, 자그만치 1달만에 알코올을 입에 댄 것이다! 미국이 생각보다 미성년자 혹은 신분증 미소지자에 대한 주류 판매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서 ― 여행객일 때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원래 이랬나 싶을 정도였다. ― 그동안 금주하며 지냈는데 이제야 술을 마실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참고로 주일마다 혀끝을 적시는 성만찬의 포도주는 제외했다.) 진짜 오랜만에 맥주를 마셨는데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그 흔하디 흔한 칭타오 맥주 두 병이었는데 어찌 그리 술술 넘어가던지.


Ellison 교수님도 내가 술을 마시니 좀 긴장이 완화된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사실 업무 이외의 것으로는 교수님과 연구실 동료들에게 말을 잘 안 하는데, 이날따라 술이 들어가니 이것저것 말이 조금 많아지긴 했다. 미국 생활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미국 사람은, 그리고 미국 사람과 소통할 때 무조건 해야 하는 '미국식 영어'에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다. 물론 더욱 익숙해지면 좀 더 편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 대학원에서의 지도교수에 대한 태도나 소통하던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측면도 있고 (물론 버릴 생각도 없고) 내 스스로 미국인에 대한 외국인공포증(xenophobia) 비스무레 한 게 맘속 어딘가에 있는지라 아직 미네소타 대학의 미국인들과는 활발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편이다.


여기에 대해 잠깐 덧붙이자면, 나는 희한하게도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외국인에 대해서는 상당히 활발하고 스스럼 없지만, 모국어가 영어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의기소침해하는 면이 있다. 아마도 '당신의 모국어가 영어이기 때문에 내가 구사하는 영어가 불완전하고 또 부족하다는 것을 당신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는 너무 부끄럽다'라는 일종의 완벽주의, 혹은 수치를 회피하려는 기제가 작동하는 것 같다. 물론 다 부질 없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다른 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에게 '네이티브와의 영어 회화'는 장장 십수년간 정말 스트레스 그 자체였기 때문에 아직 트라우마로서 내재되어 있는 것 같으니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나중에 여권 가지고 가서 주류 판매점에서 맥주나 몇 캔 사 놓아야지 하고 글을 마치려다가 하나 더 덧붙인다. 결국 이것저것 다 겪고 나니 해외유학의 장점은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오직 이것 하나 뿐이다. 곧, 연구 세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영어라는 언어에 대한 장벽이 극적으로 낮아진다는 것이다. 해외 학위? 더 좋은 연구 시설? 합리적 개인주의? 이런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일 뿐이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연구 세계에서 영어가 왜 중요한지만 간단히 적고 자야 겠다. 인간에게 스타크래프트(StarCraft)의 프로토스(Protoss) 종족이 사용했다는 칼라(Khala)를 통한 비언어적 교감이 적용되지 않는 이상, 모든 과정과 결과는 결국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세계의 공용어는 패권을 쥔 미국의 언어, 곧 영어가 되었다. 연구도, 한국어도 잘 하지만 영어를 못하는 것은 암산과 맞춤법 이해에는 비상한 농아인(聾啞人)과도 같은 것이다.



For the sake! Of the call!

-fluorF-